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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보배 같은 글,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Life

by kh2020 2017. 5. 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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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시론집 『벼랑 끝으로 오라』 를 읽고]

     

장보금 l 경영관리본부 정관영 부장 부인

 

 

      

 “사내 비밀연애의 기본은 암호 만들기. 남들이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이란 참으로 스릴만점이죠. 신랑 애칭을 여자이름으로 바꿔치기했어요. 마치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것처럼 행세했지만 눈치 빠른 동료직원은 아마도 눈치 챘을 겁니다. 그것 말고도 비밀연애의 별미는 참으로 많습니다.. 앞뒤로 앉아서 옆구리 찌르는 재미, 복사기 앞에 그 사람이 서있으면 괜히 지나가는 척 하다가 슬쩍 건드리고, 상대방이 풀이 죽어 있으면 살며시 건네주는 쪽지메모 한 장으로 기운을 되찾는․․․ 그런 사소한 재미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장보금 님은 우리 건화에서 총무부, 도로부, PQ팀을 거쳐 비서실에서 근무하였고 정관영 부장을 운명처럼 만나 밀애 끝에 결혼에 골인, 사내결혼 3호로 기록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랑의 징표인 귀여운 딸아이 수민이, 연주, 은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딸 만세!네요? 장보금 님이 황광웅 회장님의 시론집 벼랑 끝으로 오라를 읽고 감상문을 정성스럽게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행복한 가족여행. 설악산 흔들바위 앞에서... (왼쪽부터) 첫째 수민이, , 셋째 은재, 둘째 연주, 남편.

       

 건화는 나의 젊음이자 나의 미래이기도 하며 친정 같은 곳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건화 근무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비서실에서 회장님을 가까이 모셨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손을 씻으신 후 손바닥을 쫙 펴고 걸어오시던 그 귀여우신 모습(정말 죄송하지만 이 표현 말고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귀여우시다가도 화가 나시면 그가 누구든 생쥐처럼(?) 쪼그라들 수밖에 없게 만드시는 능력이 있으셨고, 약한 자에겐 한없이 약하시고 강한 자에겐 담대히 강하셨던 분이셨다.

       

 우리 사원들에겐 마치 아빠처럼 자상하시고 따뜻하셨다. 입사한 지 얼마 안됐을 때 회장님과 같은 사무실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직원들과 너무 떠들어서 부장님께 불려가 혼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걸 몸소 느끼게 해주신 정말 강건하신 분이셨는데 연세가 드시니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회장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그런 회장님께서 책을 내셨다고 해서 반가웠지만 아주 조금은 지루할 것이라 예상했다. 죄송하게도 이런 감상문 쓰기 과제가 없었다면 한동안 책장에 꽂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등 떠밀리듯 처음 책장을 펼치고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정말 보배 같은 내용들로 가득했다. 비록 책은 좀 지저분해질지 모르나 좋은 사람들과 돌려 읽어 그들도 나와 같이 행복하도록 해주고 싶다.

       

 첫 내용이 바로 대·중소회사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었다. 사람을 사랑하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특히 송무백열(松茂栢悅)은 그릇이 작은 나로서는 그 큰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사자성어였지만, 상생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 국가적으로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상생, 소통, 융합, 화합, 이러한 단어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헬조선이다 뭐다 무서운 말 투성이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과거에도 그랬듯이 우린 버젓이 일어나서 오대양 육대주를 향해 뻗어 나갈 것을 믿는다. 우리는 이제 백성이 아니라 시민임을 우리 스스로 알고 있고 스스로 품위 있게 살려고 노력할 것임에 우리의 미래는 밝다.

       

 해외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강조하셨다. 개인적으로는 그 흔한 페이스북도 하지 않고 카톡 정도만 지인들과 주고받는데 처음엔 그도 못미더워 중학생 아이와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아이의 손을 들어주었고 지금은 핸드폰을 몇 시간을 하든 아이 스스로를 믿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면서 가정의 평화가 찾아왔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가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스스로는 부정적인 시각에 가로막혀 나 스스로를 세상과 담쌓고 살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도 마찬가지 않을까. 부정적인 부분이 확실히 많아 보여도 그 뒤에 긍정적인 것들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 아이의 몫인 것이다. 구더기가 무서워 아예 장을 만들지 말라고 할 수 없듯이 말이다. 나부터 스스로 끊임없이 성찰, 반성하고 변화해야 함을 느낀다.

       

 또한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하셨고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셨다. 80-20 법칙도 일깨워 주셨다. 중요한 일에 대한 선택적 집중을 강조하셨는데 아주 명쾌한 말씀 같다. 그렇게 집중하고 난 후의 여백은 온전히 나를 비우는 시간이다. 비우면서 또 다른 것을 채우는․․․ 우리의 몸도 잘 비워야 건강한 것처럼. 여행의 중요성은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 잠깐씩 멈춘다는 이야기는 정말 낭만적이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건화 시절 여직원들과 기차여행을 간다. 건화 식권으로 치맥을 먹던 바로 그 친구들이다. 그 중에 한 명이 이쁘게 하고 오라고 한다. 사진을 많이 찍어주겠노라고. “난 사진 찍히는 거 정말 싫어한다. 알지? 근데 오늘이 제일 젊으니까 많이 찍어줘~” 라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건화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선사했고 지금도 여전히 선물을 주고 있다. 삶의 동반자, 삶의 터전, 그리고 함께 삶의 여로를 걸어갈 둘도 없는 친구들까지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새삼 또 감사드리게 된다.

       

건화가 인연이 되어 만난, 둘도 없는 친구들과 기차 여행을 떠났다. 김윤희(왼쪽)는 도로부, 지반터널부, 감리CM본부, PQ팀에서 근무했고, 김현정(오른쪽)은 도로부에서만 근무했다. 가운데는 나. 이런 인연을 맺게 해준 건화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좁아졌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 건너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하지만 기쁨은 줄었다. 외계를 정복했을지 모르나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채우는 데만 급급했지 비우는 데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우리에게 쉼표와 느낌표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느끼게 해주는 쓸쓸한 말인 것 같다.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시골에서 자란 환경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뒤돌아보면 힘든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만 남게 되듯이 시골의 기억은 어떤 명화보다도 아름답다. 초록들판에 누워 자던 기억, 얼음판 밑에 물고기들이 노니는 기억, 왕거머리를 잡아 동글동글 굴리던 기억․․․ 이것은 자연의 선물이며 그런 기억을 주심에 감사드린다. 시골 특유의 풀냄새 흙냄새를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집엔 항상 화초가 그득하다. 베란다에 화초를 가득 심어 놓으면 시골 내음을 따라갈 순 없어도 그 비슷한 향기는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 바람을 싫어해서 지금껏 에어컨도 없이 살았다. 미세먼지고 뭐고 항상 창문을 활짝 여는 버릇도 자연 바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기 때문이다. 글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감성, 그것이 시골에서 누린 여백에서 자연스레 나에겐 생겼다. 하루 중에는 새벽보다는 어스름 노을 지는 때를 가장 좋아한다. 밥 짓는 냄새와 아이들이 신나게 놀다가 저마다 엄마 품으로 돌아가는 회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바로 여백이지 않았을까 싶다. ~ 오늘 하루도 신나게 놀았으니 집에 가서 밥 먹고 자야지~ 뭐 이런 것들. 그래서인지 집은 저녁이 되면 돌아오고 싶은 곳이 되도록 만들려고 꽤나 노력한다.

     

 솔직히 건설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긴 했지만 건설은 노가다라는 개념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건설이라고 말씀하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항상 부정적인 것들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과거 삶을 돌아볼 때 그땐 충분히 힘들었고 지금 살기 좋아지는 것은 맞다고 본다.

         

 고용 없는 성장, 청년 일자리 부재, 아이 없는 나라 등등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앞으로는 은행원도 없어지고 변호사도 없어질 직업이라고 들었다. 대선 TV토론을 보면서 한 후보가 지적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후보님의 공약엔 사람이 없다는 말. 어떤 성장을 하든지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초심. 그 초심을 잃지 않으면 우리는 밝은 미래를 기대해도 될 것이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서 제법 하던 공부를 가수 EXO를 시작으로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온갖 고초를 겪은 후에야 생각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었다. 세월호만 생각하자. 내 옆에 우리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있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 힘든 만큼 다짐도 많이 했다. 시간이 흘러 많이 좋아진 모습에 웃을 일도 많아지고 성적도 회복하고 스스로 대견해 하는 모습이 또한 대견하다. 막둥이가 나중에 내가 뭐가 되면 엄만 좋겠냐고 묻는다. 마치 꼭 그것이 되어줄 것처럼 말이다. “~ 행복한 사람~” 하면 에이~” 하며 피식 웃고 만다. 문득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말한다. “00야 행복해야 돼~” 아이는 가슴 깊이 새길 것이다. 적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이다.

    

설악산 신흥사 돌담길에서... 이 사랑을, 이 행복을 영원토록 지켜주소서.

            

 내용 중에 회장님께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하신 경험이 있었다. 우리나라 직원들은 뙤약볕에서 그늘 하나 없이 일하는데 선진국 직원들은 에어컨 달린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하면서도 우리나라 직원보다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아서 가슴 아파하신 내용. 나는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십여 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에 기억되는 한 장의 사진 속 아빠의 모습. 가보지 않았어도 사진을 통해서 충분히 느껴지는 그 열기. 선글라스 따위가 그 잘생기신 얼굴을 어찌 가리랴. 그을렸지만 당당하게 웃으시며 서 계시던 아빠의 모습.

         

 그 한 장의 사진 속엔 아빠의 삶이 영화 필름처럼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갑작스런 사업의 실패로 마을 최고부호에서 생때같은 자식 일곱을 한국 땅에 두고 그 먼 나라로 가실 수밖에 없으셨던 삶. 내가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은 그 사진 한 장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 열정․․․ 사진 한 장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남들보다 열심히 산 것엔 자부하지만 뒤돌아보게 된다. 20%의 총력을 사용했는가, 1만 시간 중 얼마의 시간을 쏟아 부었는가. 바위에 구멍이 날 만큼 빈도수는 많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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