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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혁명의 추동력은 ‘휴머니티’로부터

Life/여가&문화

by kh2020 2017. 8. 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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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장 대표 초청 강연회]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들썩이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3D프린터, 자율주행차 등... 눈부신 기술진보가 이 혁명을 이끌고 있다. 그렇다 보니 변화의 물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의 문제가 마치 기술의 문제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혁명은 기술의 문제 이전에, 사람의 문제다. 기술은 수단에 불과하다. 혁명의 추동력은 사람(Humanity)으로부터 나온다.”

 

 (왼쪽부터) 교통계획부 박완용 부사장, 문형택 부장

 

 지난 627일 선릉역 부근 최인아책방에서 개최한 외부인사 초청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강연회에는 오리진이 되라, 감성의 끝에 서라, 고전 결박을 풀다의 저자인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님이 오셔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강신장 대표의 신간 『고전 결박을 풀다

 

 강 대표님이 500편의 고전을 5분 동영상으로 축약해 만든 고전5미닛은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고전에 편안하게 다가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강연회에는 변화의 방향을 감지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참석하여 열띤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강연회에 참석을 권유하신 우리회사 교통계획부 박완용 부사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왼쪽부터) 교통계획부 박완용 부사장, 기획실 이용범 부사장

 

 아래는 강신장 대표님의 강의내용 중 일부입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기둥을 세울 때 배흘림기법을 적용하였다. 기둥의 굵기를 균일하게 하면 가운데 부분이 가늘게 보이는데, 이런 착시현상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가운데를 볼록 튀어나오게 세운 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 건축물을 세우면서 이토록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시하는 기법을 구사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할 수밖에...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의 이념이 숨어 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강연 중인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   

 

 당산역 에스컬레이터는 바닥에서 끝까지 길이가 무려 48m에 달한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는 24m. 8층짜리 건물 높이와 비슷하다. 이곳에 위험! 절대 뛰지 마세요라는 팻말을 붙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승객들은 전동차가 들어온다는 메시지를 들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그냥 뛰어내려가곤 했다. 9호선 직원들이 고민한 끝에 팻말의 문구를 바꿨다(아래 사진). 그랬더니 승객들이 달라졌다. 급하게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려 가는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 들어오는 저 열차!!

여기서 뛰어도 못 탑니다.

제가 해봤어요.

 

 이탈리아의 문학가이자 엽색가 지아코모 카사노바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남들과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하여 내 전부를 걸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던 당대의 호색한다운 말이다. 상대의 요구를 읽어내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걸만큼 어마무시한 일이라니! 기술만으로는 세상을 만족시킬 수 없다. 기술은 반드시 인문학과 결합해야 한다. “애플은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다고 한 스티브 잡스의 말은 대중 앞에서 폼 잡으려고 한 말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을 지녔기에 이 말을 할 수 있었다.

 

최안아책방에서 낯익은 책을 발견했다... 『열정에 기름붓기

 

 신광철 시인의 짧은 시 하나를 낭송해 보겠다.

 

   사람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우리는 어떡하면 사람들 마음속 휴머니티(Humanity)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는 휴머니티의 출발점은 연민(Sympathy)이라고 본다. 이것은 남의 일로 보지 않고 나의 마음으로, 내 일로 보는 것이다. 비즈니스 역시 연민의 인문학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우버만 해도 그렇다. 택시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었기에 우버 서비스는 탄생될 수 있었다.

 

 다른 것을 다르게 보려면 네 개의 눈을 가져야 한다. 첫째는 시인의 눈, 둘째는 디자이너의 눈, 셋째는 발명가의 눈, 넷째는 인류학자의 눈. 이중에서 제일 파괴적인(?) 눈은 바로 시인의 눈이다.

 

 내가 즐겨 인용하는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을 낭송해 보자.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 없다

      저 안에는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또 하나, 정일근 시인의 바다의 마음을 읊은 시를 빼놓을 순 없겠다.

 

   태안반도에서 들었다

 

      소라 구멍에 귀를 가져다 대면

      소라가 전하는 바다의 말

 

      야이이이이이이이개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인은 자신이 대추가 되어보고 바다가 되었기에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 거다. 이것을 일체화(一體化)라고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대추와 일체화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몽땅 가지고연민의 눈을 크게 뜬 상태로대추가 처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음을 대추의 말을 빌려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이 시가 된다.

 

 나는 일만 바라보고 사람은 보지 않고 있는 게 아닌지?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살아있는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 4차 산업혁명에 관련하여 온갖 기술들이 난무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들은 말짱 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술은 남에게 사다 쓰면 되는 수단일 뿐이다. 승부처는 누가 휴머니티를 보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지닌다면 혁신적인 제품, 초월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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