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히스토리] 1사1촌 활동 - 강화 삼성리와 맺은 인연

Story/히스토리

by kh2020 2018. 10. 25. 14:59

본문

 뿌리를 찾아서   일찍이 단채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뿌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요. 이것은 기업 현장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금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뿌리를 기억하는 것은, 회사 경영철학에 함께 공감하고 조직 저변에 흐르는 기업문화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찾아나서고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일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 기록의 창고가 될 히스토리코너를 신설하였습니다. 번째로 ‘11촌 활동의 히스토리를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기고] 총무부 송영일 과장

 

 

 

보여주기 식보다는 내적 진정성이 중요해

 

 농촌사랑 11 운동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을 황광웅 회장님의 인터뷰 내용(시론집 벼랑 끝으로 오라p196~197)에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Q. 토목은 사회 기반을 구축하는 큰 역할을 하고, 그 기반의 초석을 다지는 일을 엔지니어가 한다고 보는데요. 사회공동체 속에서는 건화가 어떤 역할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회사가 이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있습니다. 회사 규모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도 커졌고 그러한 역할들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중략)..... 무엇보다 외부에 보여주기 식보다는 내적인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회사도 하고 있는 ‘11활동의 예를 들면 대개는 보여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죠. 많은 기업들이 몇 년 반짝하고 끝내는데, 우리 건화는 이벤트성이 아니라 십여 년을 한결같이 해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항상 진짜로 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2005년 강화 삼성1리와 자매결연을 맺다

 

 

 

 20051213, 우리회사는 강화군 불은면 삼성1리와 11촌 자매결연을 맺게 됩니다. 그 자세한 내용을 문화일보 기사와 사진 자료를 통해 알아봅니다.

 

 

우리 농산물 제값조차 못받아

건화엔지니어링 - 인천 강화군 불은면 삼성리

 

11운동 농촌사랑

 

 토목설계 및 감리회사인 건화엔지니어링(회장 황광웅)‘11촌 운동에 동참했다.

 

 ㈜건화엔지니어링은 지난달 13일 인천 강화군 불은면 삼성리 마을회관에서 황광웅 회장과 임직원 30여 명, 김만실 이장과 마을주민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삼성리와 11촌 결연식을 가졌다.

 

 황 회장은 쌀시장 개방과 각종 농산물의 시장개방으로 좋은 품질의 우리 농산물이 제값조차 못 받는 안타까운 현실을 잘 알고 있다앞으로 농번기 일손돕기에 나서는 한편 삼성리의 질 좋은 쌀과 특산물을 구입하는 등 적극적인 교류를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건화엔지니어링은 삼성리에서 생산한 쌀 9000만원 어치를 구입하고 운동기구 등을 마을에 기증했다. 삼성리도 특산물인 고구마 등을 임직원에게 선물했다. (2006. 1. 6 문화일보)

 


 

함안의 향기가 묻어나오는 또 하나의 고향

 

  불은면 삼성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그 인연은 함안의 향기에서 시작됩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황 회장님께서 강화도에 오셨다가 우연히 삼성리에 들르게 되셨는데, 회장님은 이곳에서 고향(경남 함안)의 아련한 향기가 묻어나오는 것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회장님께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함안을 떠나셨으니 기실 고향은 있으되 고향을 잃은 처지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삼성리를 만나 고향을 느끼시고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자는 마음으로 집을 마련하고 텃밭을 일구시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연은 20061월 문화일보에 회장님이 기고하신 나의 농촌사랑(아래)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발길이 삼성리에 닿으니) 묘하게도 참으로 아련히 기억으로만 남아 있던 고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 태어나 자란 고향이 아니면 어떠랴, 이곳에 터를 잡아보자.”는 대목에서 그 당시 회장님의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삼성리와 우리회사는 11촌 결연을 맺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14년째 둘 사이의 11촌의 관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1촌 덕에 고향 하나 추가요~

 

나의 농촌사랑

황광웅 건화엔지니어링 회장

 

 인천 강화군 불은면 삼성리, 지난달 13일 우리 건화엔지니어링은 이곳과 자매의 연을 맺었다. 비록 이런 인연은 요즘은 유행처럼 되었으나, 나에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15년 전, 나는 여행 삼아 강화도 내지를 다니던 중 삼성리에 닿았다. 묘하게도 참으로 아련히 기억으로만 남아 있던 고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본래 나의 고향은 경남 함안. 그곳의 들과 산천에서 뛰놀고 배우며 청년이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후 내내 고향을 떠나 살았고 고향의 친지들마저 이제는 흩어졌으니, 기실 고향이 있으되 고향을 잃은 처지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화에서 고향을 느꼈으니.

 

 그래, 태어나 자란 고향이 아니면 어떠랴, 이곳에 터를 잡아보자. 그래서 농가를 사고, 주말이면 텃밭을 일구고, 마을노인회에도 나가 마을 대소사를 같이 하면서,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회사일로 머리가 복잡했던 한 주가 지나면 삼성리를 향했다. 장화를 신고 일복을 입는 순간, 머리는 맑게 개고 마음은 고향의 평온함에 젖었다. 업무 중에도 새로 자란 상추를 떠올리면 자식 키울 때의 조바심이 일곤 하였다.

 

 이 좋은 인연을 혼자만 누려 아쉽고, 마을 형편을 실질적으로 도울 길이 없어 안타깝던 차에 11촌 운동을 만났다. 이제 900여 직원들과 함께 농산물 직거래도 하고 일손도 도우면서 좋은 인연을 나눌 기회를 얻은 셈이다. 작은 첫걸음으로 지난 연말 마을의 쌀 9000여만원어치를 구입하여 직원마다 나누었고 마을 회관에 노인용 건강기구와 의자 등속도 구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첫발에 불과하다. 도시민들 사이에 주말농장과 농촌체험 붐이 일고 있는 요즘, 지속적이고 상호교류적인 2의 고향 만들기가 결코 먼 꿈은 아닐 것이다. 강화미, 약쑥, 순무, 고구마가 직원들 가정에 건강을 선사할 뿐 아니라, ‘고향의 품을 선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06. 1. 6 문화일보)

 

 

 

 삼성1리 김만실 이장님을 만나 회고담을 들었습니다.

 

 “2005년 어느 날, 건화에서 사람이 찾아와 삼성리하고 협약을 맺고 친하게 지내자고 하시더라고요. 우리야 일손도 모자라고, 건화라는 회사가 친구를 하자는데 마다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매년 직원들이 때가 되면 와서 고구마도 캐 주고 또 팔아 주시고, 해마다 연말에는 쌀도 2000포 이상 사 주시고, 마을회관에 기증도 많이 해주셔서 우리 입장에선 참 고마운 일이죠. 사실은 몇 년 하다 말겠지 했습니다. 이게 벌써 14년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정이 오래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강화군-불은면-삼성리 알아보기

 

강화의 옛 이름은 혈구

 

 강화도는 한강 및 임진강과 예성강이 만나는 곳에 있고 수도 서울로 진입하는 입구여서 예나 지금이나 전략적 요충지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입지를 반영하여 삼국시대 강화는 '갑비고차(甲比古次)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갑비고차란 현대어로는 갑곶가 되며, 두 갈래 물가에 있는 곶이라는 뜻이며, 이러한 명칭은 현재 강화대교 근방의 동네 갑곳리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후 고구려가 강화도를 접수한 뒤 강화도는 '혈구(穴口)'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강을 내륙으로 들어가는 목구멍으로 본다면 강화도는 그 입구에 위치한 섬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통일신라는 강화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에 혈구진(穴口鎭)을 설치하게 됩니다. (삼성리 뒤쪽에 높이 솟은 산 이름이 '혈구산'이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이 강화도의 중심지였음을 암시해준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와서는 현 명칭인 '강화(江華)'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불은(佛恩) = ‘부처님의 은혜

 

 이번에는 불은면이름의 유래에 대해 알아볼까요?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 이 근방에는 자은사(慈恩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요. 이 절의 이름에서 은혜 은()자를 따고 부처를 뜻하는 불()자를 합쳐서 부처님의 은혜라는 뜻으로 불은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은면에서 발행한 佛恩面誌(2016). 단독으로 면지(面誌)’를 편찬해 낼 정도로 불은면은 뿌리가 있는 고장이다. 표지 사진은 고능2리에 있는 천세 은행나무’.

 

 불은면은 생생한 역사교육의 현장입니다. 서해안 최후의 보루라는 점 때문에 외침도 잦았습니다. 외세 침략에 대항하여 국토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현장인 덕진진(德津鎭)과 광성보(廣城堡)는 불은면의 자부심입니다. 특히 광성보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600명의 병사들이 신무기로 무장한 미국 해군에 맞서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불퇴전의 각오로 싸우다가 희생된 곳입니다.

 

 또한 불은면은 통일신라시대에 설치된 혈구진(穴口鎭)의 중심부가 자리했던 곳이며,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전투의 영웅인 권율(權慄) 장군의 별장과 고려시대 최고의 대문장가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집터 등 자랑스러운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바닷가 포구였던 삼성리

 

 삼성리는 혈구산(穴口山)이 포근히 감싸주는 형상인 동네입니다. 혈구산은 해발 466m로 강화도에서는 마니산 다음으로 높은 산입니다. 혈구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삼성리는 원래 포구였다고 합니다. 지금 삼성리 앞에는 너른 평야지대인데 옛날에는 포구였다니... 상상이 안 되지요? 삼성1리 김만실 이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바다에 둑을 쌓기 전에는 이곳에 대청포(大淸浦)라는 큰 포구가 있었어요. 그때는 주로 청나라 사람들이 왕래했기에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인근 돌성부락에는 당시 제방을 쌓았던 돌무더기가 일부 남아있지요.”

 

 궁금증이 풀렸죠? 제방을 쌓아 바다를 전답으로 바꾸어놓은 겁니다.

 

 

강화도 제방들은 토목기술이 집합된 결과물

 

강화도 현 면적의 1/3이 옛날에는 바다였다

 

 사실 강화도에는 제방이 무려 120개나 있습니다. 제방 쌓기는 고려때 본격화됩니다. 몽골이 침략해오자 고려 조정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이곳에서 무려 39년간 장기 항전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때 식량 조달을 위해 강화의 지형이 바뀔 정도로 많은 간척사업을 벌이게 됩니다.

 

 조선 시대에는 강화도가 전란시 조정이 피난할만한 최적의 장소(이른바 보장처)로 지목되어 많은 제방을 쌓고 경작지를 넓혀가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마니산 일대와 강화도가 두 섬으로 나뉘어져 있던 것이 하나의 섬으로 합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제방들을 쌓기 전에 강화도는 현 면적의 1/3바다였다고 합니다. 상전벽해와 같은 일이 강화도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물컹물컹한 갯벌 위로 묵직한 돌들을 운반하고, 파도에 쓸려가지 않도록 둑을 단단히 쌓는 일이 당시 기술로는 아주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도, 무려 120개나 되는 둑이 완공되고 경작지로 변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신이 고안한 거중기’(오늘날의 기중기와 기능이 같다)를 둑 쌓기에 사용하라고 권했다고 하니, 강화도 제방 쌓기 공사는 과학적경험적인 공법들이 총동원된 토목사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강화에 남긴 건화 엔지니어들의 족적

 

 강화도 제방 쌓기를 통해 자신의 토목기술을 한껏 발휘한 고려~조선시대 선배 엔지니어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지금은 건화의 엔지니어들이 강화도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앞장섬으로써 지역사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회사는 11촌 농촌사랑 운동에서 더 나아가 SOC 관련 프로젝트를 통해 강화도와의 인연을 더욱 뜻 깊게 발전시켜가고 있습니다.

 

 우리회사가 강화도에서 수행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들을 지도에 표시해 보았습니다.

 

 

 

다양한 11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

 

 다시 11촌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11촌 활동을 대표하는 고구마캐기 체험행사는 거의 매년 가을에 열리고 있는데, 행사 참여 가족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제는 300여 명이 참석하는 명실공히 우리회사의 중요한 연례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회사는 고구마캐기 체험행사와 더불어 고구마 구입행사를 통해서 매년 평균 500박스 이상의 고구마를 구입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700박스에 가까운 고구마를 구입했습니다. 또한 연말에는 강화섬쌀을 구입하여 임직원에게 연말선물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삼성1리 마을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물품들, 이를테면 의료용품이나 생활용품, 주방기기, 농기구 등 다양한 물품을 기증함으로써 마을 주민들의 건강이나 편익 증진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2009년 삼성1리와 우리회사는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에서 주는 농촌사랑 11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농산물 직거래 등 발전방안 모색되었으면․․․

 

 11촌 농촌사랑 운동의 진행을 위해서는 많은 스탭들의 협조가 필요한데요. 다음은 11촌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인 총무부 김의수 상무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Q. 고구마캐기 행사는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었으며, 가장 첫번째 행사의 모습은 어땠나요?

 

 10~20년 전, 11촌 자매결연 운동은 사회 전반에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도 자매결연 마을의 바쁜 일손도 돕고, 임직원 가족들에게는 뜻 깊고, 재미있고, 추억이 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고구마캐기를 시작하게 되었죠. 특히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고, 아이들에게는 체험을 통해 동심이 쑥쑥 자라게 하는 행사였지요. 어른들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고, 개구쟁이 아이들은 장난기가 가득하고 흐뭇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Q. 처음과 현재 행사를 비교해 보면 어떤 점들이 달라졌나요?

 

 크게 달라진 점은 없고요. 예전에는 체험행사를 진행할 고구마밭은 마을 주민이 자체 협의해서 선정했고, 마을에 기증할 지원품은 회사에서 결정해서 지원했지만, 이제는 마을 주민의 의견을 듣고 난 후에 결정합니다.

 

 행사 참여자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약간 동원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등 좀 더 자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봅니다.

 

Q. 임직원과 가족까지 포함하여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데 행사 진행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많은 가족들이 참가하지만 워낙 협조를 잘해주셔서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행사 직전에 또는 무단으로 불참하는 임직원이 간혹 있고, 행사의 취지를 생각해서 버스를 이용하면 좋겠으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분이 많아서 주차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어요.

 

 좋은 일을 하면서 노변에 불법주차를 한다든지 또 다른 가게 앞에 주차를 해서 영업에 방해가 된다든지 하는 점은 개선해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외에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없고요, 앞으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자율적으로 솔선수범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행사 총 진행자로서 향후 어떤 모습으로 11촌 행사가 발전했으면 좋겠나요?

 

 회사에서는 일손돕기를 1 정도 시행하지만 앞으로는 봉사희망자가 나와서 실제 일손이 필요한 시기에 소규모일지라도 수시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또한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농산물 직거래를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도입해서 마을과 회사가 상생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