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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서터맨에 대하여 2...

People/건화가족

by kh2030 2016. 4. 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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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지반터널부 김영근 전무

     

2015년 임원 및 감리단장회의 때 총무부 김의수 상무(왼쪽)와 함께.

     

화려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엔지니어로서의 그 길은 나름 의미있고 가치로운 길임을 알려주고 싶다. 비록 험하고 어렵지만 갈 만한 가치가 있었고 모두가 함께 같이 갈 수 있는 길이었음을 말이다.”

      

 나에게는 서재라고 하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명색이 공학박사에 엔지니어링을 업으로 먹고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인 책들이 무척이나 많은 게 현실이었고, 아내가 이 많은 책을 다 읽어봤냐는 날카로운(?) 엉뚱한 질문을 받을 때면 난 할 말을 잃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러한 나만의 공간은 품격이 아닌, 짐이라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아내로부터 웬만하면 쓸데없는 책 좀 버리지 하는 눈총을 자주 받곤 하였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부터 너무 지저분하기도 해서 정리 좀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간의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지금, 주말의 일상 중의 하나는 오래된 책장이나 서랍 등을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하는 일이다. 낡은 책들과 보고서들, 현장 사진과 자료 등등 아마도 책장에 꽂힌지 한번도 다시 나와 보지 못한 것들도 상당수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참 버리기 어려웠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은 이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큰맘을 먹고 정리라는 것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지반지에 게재된 글 하나, 바로 셔터맨에 대하여였다. 그 당시 난 지반공학회 암반역학위원회 간사를 맡아 학회일을 하고 있었는데, 위원장이신 신희순 박사님의 권유로 글 하나를 쓰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글이다. 당시가 2000년이었으니 벌써 15년 전, 오래된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다시금 천천히 읽어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그때의 나의 생각들에 대하여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글이란 이렇게도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는구나 싶었다. 지금은 SNS가 중심이 된 세상에서 어떠한 생각들이나 느낌을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나 우리와 같은 엔지니어의 경우는 더 그렇다. 하지만 불현듯 다시 한 번 셔터맨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은 맘이 들었다. 이름하여 셔터맨에 대하여 2”이다.

   

지반지에 게재된 "셔터맨에 대햐여"(2000년)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 당시는 의약분업이 되기 전이라 약국에서 조제가 가능하였고 매약을 중심으로 하다보니 약국의 근무시간도 밤 10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셔터맨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약국의 허드렛일이나 셔터를 내리는 일은 나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약분업의 시대로 약사의 조제권은 의사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지금은 단지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조제를 하게 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약국은 병원과 협업의 관계(냉정히 말하면 갑을의 관계)로 전환되었고, 아내의 약국도 이러한 시스템을 따라 병원을 낀 약국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병원의 오픈시간에 맞추게 됨에 따라 야간근무가 줄어들게 되었고, 당연히 셔터맨의 역할도 대폭 감소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주말에는 병원에 맞추어 약국을 열어야 하고, 명절전후로 편안히 쉴 수 없다는 나름의 고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약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셔터맨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욱 커진 것 같다. 2016년 작금의 상황, 즉 명퇴가 빨라지고, 권고사직이 난무하는 불안한 우리 업계의 현실에서 아내가 약국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메리트임에는 틀림없다. 셔터맨이라는 사실이 주체적인 엔지니어로서 평가받기보다는 장래에 대한 안정성에 대한 경제적 가치로서 이해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나름 미래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줄었다는 상황에 대하여 안도하면서도 엔지니어라는 직업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현실에 다하여 왠지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엔지니어링에 사회적 가치판단과 위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셔터맨에 대한 생각과 편견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지난 15년 전 이러한 글을 썼을 때처럼 말이다.

  

 엔지니어링을 업으로 살아온 지난 20여년의 시간들, 공학을 공부하는데 10년을 더해 벌써 30여 년을 엔지니어링과 함께 해왔다. 이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 고민도 많았고, 후회의 시간도 있었고, 성장의 시간도 요구되었다. 가끔씩 후배들에게 엔지니어란 무엇인가를 얘기할 기회가 주어지면 맨 먼저 말하는 것이 바로 자기 일에 대한 사랑 즉 열정을 가지라는 것이다. 열심히 하다보면, 꾸준히 가다보면 반드시 얻게 되며 이루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한 것 같다. 주변을 보면 힘들어지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갑자기 회사를 떠나도록 강 요받고,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고 전화 한 통으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냉정한 현실을 겪게 되면서, 어느 선배가 후배들에게 엔지니어가 되라고 소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싶다. 하지만 화려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엔지니어로서의 그 길은 나름 의미있고 가치로운 길임을 알려주고 싶다. 비록 험하고 어렵지만 갈 만한 가치가 있었고 모두가 함께 같이 갈 수 있는 길이었음을 말이다.

  

 난 아직도 셔터맨이다. 셔터맨 24년차, 하지만 지금은 셔터를 내리지 않는다. 세상이 달라진 이상 거기에 맞게 셔터맨의 역할도 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은 난 여전히 약국을 운영하는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의 혜택 받은 남자들의 우상에 대한 생각들이다. 요즘 같이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백세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오래 일할 수 있는 전문직에 대한 생각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주변의 친구들이나 직장동료 등의 부러움속에서도, 난 엔지니어로서 자리매김하려고 노력하는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 난 내 일을 사랑하는 엔지니어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엔지니어링을 업으로 살아온 엔지니어라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속에 변화된 '셔터맨 2'(2016년)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가장 달라진 것은 바로 또 다른 셔터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약국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 방학이 되면 가끔씩 컴퓨터 입력 등 변화된 새로운 작업을 도와주곤 한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어느덧 50이 다 된 나에게 그러한 일들은 감당이 안 되는 일들이 되어 버렸다. 타이핑도 늦고, 눈도 어두워지고, 머리 회전도 둔하게 되고 등등. 이것이 바로 세월의 흐름이라는 것인가 싶다.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와 아빠의 일을 도와주는 자식들의 모습 속에서, 늙어가는 셔터맨을 대신하여 줄 수 있는, 또 다른 셔터맨의 등장을 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난 세월 아내를 도와주는 셔터맨에서 이제는 엄마를 도와주는 셔터맨으로서 변화야말로 내가 바래왔던 가장 의미있는 변화이자,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셔터맨으로 살아왔던 삶의 보람인 것이다. 셔터맨으로서의 가치는 가족이라는 이름속에서 존재하고, 셔터맨으로서의 행복은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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