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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화人터뷰] “거센 파도가 강한 어부를 만든다”-송도현장 문일성 이사

People/건화가족

by kh2020 2016. 11. 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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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감리CM본부 문일성 이사

  

 Q. 단장님, 안녕하세요! 인천 송도는 처음 와 봅니다. 인천 송도지역을 소개해 주시지요.

  

 송도는 인천국제공항이라는 공항인프라를 배후로 하여 건설된 경제자유구역이죠.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민간개발도시입니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인천광역시 연수구와 남동구 해안의 바다를 매립해 그 위에 도시를 개발하였고 현재도 매립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면적이 55km²․․․ 여의도의 12배에 달할 정도이니 대단하죠? 송도는 연수구와 남동구,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다리로 연결된 인공섬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개발도시 송도

  

Q. 송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나 대표 먹거리를 추천해 주신다면?

  

 송도는 신도시이다 보니 유서 깊은 고적이나 문화재 같은 게 있을 리 없죠. 다만 발주처인 경제자유구청이 있는 G타워의 전망대가 좋다고들 하던데요, 제가 매일 발주처를 드나들면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한 번도 올라가보지 못했습니다. 또 송도신도시 내에도 먹거리는 제법 많지만, 그래도 여기서 멀지 않은 소래포구에서는 철마다 갖가지 해산물 등을 즐길 수 있어 좋은 먹거리 장소로 추천하고 싶네요.

  

소래포구 야경

  

Q. 단장님은 해병대를 나오셨다고 하던데요. 바다와 깊은 인연을 가지신 듯합니다. 현장에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저는 군 생활을 섬에서 했어요.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 역시 바닷가에서 시작하여 꽤 오랜 시간 바닷가에서 근무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약 12년 동안 근무를 했는데 현장이 모두 해안가에 위치한 하수처리장 현장이었습니다. 그때 공사관리를 하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도 배웠죠.

  

보통 해안가에 위치한 하수처리장의 경우 처리수를 방류하면 민물 유입에 따른 해안가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죠. 이를 방지하려고 조류에 의해 충분히 희석될 수 있는 먼 지점까지 해저배관을 설치하게 됩니다. 그때 저는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서 수중공사를 하는 잠수부와 함께 바다 속에 들어가서 공사관리를 했습니다. 수중공사의 경우 보통은 잠수부가 촬영해온 사진이나 동영상만으로 공사관리를 해요. 하지만 저는 작업자 안전관리 차원에서라도 직접 들어가 공사관리를 하는 게 좋다고 봤던 거죠.

  

내가 직접 촬영한 서귀포 수중경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y-L1j1WeDo

  

Q. 책임의식이 아주 투철하시네요! 스쿠버 다이빙은 요즘에도 하시나요?

  

 제주에서는 했는데 육지에 나오고 나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어요. 그 후로는 평택 아산항에서 근무한 2년에다가 현재 송도 현장까지 합하면 14~5년 동안이나 바다를 코앞에 두고 현장생활을 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바다를 봐도 딱히 어떤 감흥도 생기질 않네요.

  

Q.그럼 요즘 여가시간에는 어떤 취미활동을 하시나요?

  

 산에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에는 사람 목숨에 관련된 일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산에 간다라고 저 자신과 약속하고 산에 다닙니다. 날씨와 관계없이 무조건 갑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의 백두대간(도상 670km, 실거리 1,240km)을 두 번이나 완주한 산꾼이 되어버렸습니다. 백두대간 종주 중 지리산 종주 할 때는 하루에 35km를 다닌 적도 있어요. 평지로 환산하면 60km 정도로 18시간에서 20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죠.

  

 

설악에서 지리까지! 백두대간을 두 번이나 완주했다. 백두대간의 북쪽 기점인 진부령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Q. 대단하십니다. 백두대간 종주 중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어디인가요?

  

 험한 코스도 짧게 잡으면 힘들지 않고 길게 잡으면 힘든 거 같습니다만, 제가 겪은 경험으로는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덕유산 종주 때였어요. 지리산과 덕유산은 비교가 돼요. 지리산은 거리는 멀지만(35km) 일단 능선에 올라타기만 하면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지 않아요. 그런데 덕유산은 지리산보다는 거리가 약간 짧은 대신에(32km) 오르막 내리막이 굉장히 심합니다.

  

산행을 할 때는 물 조달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요. 지리산은 중간중간 샘들이 있어서 물을 구하기가 쉬워요. 반면에 덕유산은 중간에 물을 보충할 곳이 없어서 물을 3~4kg 정도 메고 가야 해요. 산도 험하고 물 무게까지 감당해야 하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죠.

  

한 가지 더 어려운 점이 있어요. 이건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공통된 사항인데요, 바로 입산 금지구역입니다. 백두대간 완주라는 의미가 완전한(Full Route) 종주를 뜻하냐? 입산 금지구역은 제외하느냐? 딜레마가 있는 거죠. (단장님은 입산 금지구역에 들어가셨나요?) ~~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100m도 안 빼먹고 다 종주했고, 그로써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https://www.youtube.com/watch?v=Zpt8wfFY0w4 - 1차 백두대간 사진 모음

  

남덕유산 종주 중

  

덕유산 백암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맨 뒤쪽에 보이는 산이 지리산 천왕봉이다)

  

Q. 오늘 진정한 산사나이를 만난 것같습니다. 곧 겨울입니다. 산행을 권하고 싶은 겨울산 하나를 꼽는다면?

  

 덕유산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아까 덕유산은 굴곡이 심해서 힘든 산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물론 덕유산 32km를 종주하는 것은 힘들지만 가볍게 갈 수 있는 코스가 하나 있어요. 그건 바로 기술의 힘! 곤돌라입니다.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설천봉에 다다르게 되고, 거기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 이를 수 있으니 겨울산을 힘들지 않게 즐기고 올 수 있죠. 덕유산은 해발 1,614m입니다. 요즘에 가면 눈꽃이 장관을 이루지요. 눈꽃은 기온과 습도가 적당히 맞아야 볼 수 있어요. 지금 가면 딱 좋을 것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산에 다니면서 사진도 찍으시나요?) 물론이죠. 하지만 직업적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 티가 넘칩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주요 산행기록용으로 촬영해서 관리하는 제 카페가 있어요. 카페주소를 알려드릴 테니 언제 한 번 들러서 구경하세요.

  

http://cafe.daum.net/moon36th

  

Q. 산행을 하시면서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나요?

  

 물론 있었죠. 문경 대야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밤에 12시쯤 늘재라는 곳에서 출발할 때 기온이 -12였지만 실제 체감온도는 -20는 되는 거 같았어요. 설상가상으로 폭설이 내려 등산로까지 잘 보이지 않았죠.

  

(그런데도 강행군을 하신 거예요?) 가기로 맘 먹은 거니까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계획을 세우면 무조건 간다! 그냥 갔죠. 산 무서운 줄 모르고 서너 시간을 올라갔는데 새벽 무렵이 되어 너무 춥고 어두웠는데 앞에 절벽이 나타나더라고요. 그런데 절벽이 얼어서 더는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뒤로 돌아가기에도 너무 많이 들어와 버린 상태고․․․.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조난을 당해서 죽는가 보다․․․.

  

그때 이후로는 문제가 발생해도 빠른 시간 안에 구조 요청이 가능한 곳으로만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 후에 당시의 상황이 너무 억울해서(?) 눈이 없을 때 다시 한 번 그곳에 갔었는데요, 우리가 올라가지 못했던 절벽이 정상에서 100m 정도밖에 남지 않은 곳으로 그렇게까지 위험한 장소는 아니었더라고요.

  

문경 대야산 야간 산행 중

  

 

다시 찾아간 대야산에서... 그때 그 절벽을 넘어 정상에 오르다.

  

Q. 다시 해병대 시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제가 처음 해병대에 지원한 건 대학 1학년 때였어요. 그때 제 몸무게가 입대 기준에 미달했어요. 그래서 해군본부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미리 우유를 잔뜩 마시고 체중을 일시적으로 늘려 겨우 합격할 수 있었어요.

  

흔히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중 70%는 과장이라고 하죠. 제가 신병훈련소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은 다들 과장됐다고 생각하실 거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정말 혹독한 생활이었어요. 훈련소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대장이 늘 말하던 거센 파도가 강한 어부를 만든다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힘들 때면 저는 이 말을 꼭 되새깁니다. 지금의 현실 속에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와도 이를 이겨내면 뒤에 밀려오는 작은 파도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기 때문이지요. 6주간의 짧은 훈련소 생활이었지만 거센 파도가 강한 어부를 만든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 말은 저의 좌우명에 버금가는 생활신조가 되었죠.

  

해병대 신병훈련소 시절 - 막바지 훈련 때 이곳 천자봉을 올라갔다 와야 하얀 해군 명찰에서 드디어 빨간 해병대 명찰로 바꿔준다(벌써 30여 년 전의 추억이다)

  

Q. 신체검사를 받을 때 체중 제한이 몇 kg였습니까?

  

 50kg입니다. 제가 그때 50kg에 미달했어요. 육군은 50kg 이하라도 입대할 수 있었는데 해병대는 입대가 불가했었죠. (육군으로 입대하지 않고 굳이 해병대를 지원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형님께서 해병대를 나오셨어요. 포항에서 군 생활을 하셨는데 제가 면회를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형님은 분초장이었어요. 면회를 갔는데 바다 사나이들의 배짱을 보고 그때 생각했어요. 남자가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겠다고․․․ 그래서 해병대에 지원하게 되었죠.

  

그런데 한 1년 있다가 어머니께 연락이 왔는데요, “너 군대 간다고 나가더니 지금 어디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군에 간다고 집 나간 아들 앞으로 군에 오지 않았으니 군에 입대하라고 입영통지서가 왔으니 어머니께서는 오해하실 수도 있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행정처리가 잘못되어서 병무청에서 면사무소로 통지가 안 됐던 겁니다. 제가 입대 후 교육 기간도 길고(35) 자대 배치 받고 휴가 기간에 훈련이 겹쳐서 첫 휴가를 18개월 만에 나갔거든요. 그러다 보니 생긴 오해였죠.

  

아무튼 해병대 시절에 생각나는 건 진짜 고생 많이 했다예요. 우리 동기들이 105명인데 요즘도 가끔씩 만나요. 해병대 문화가 좀 특이하잖아요? 동네마다 해병전우회 컨테이너가 있고, 무슨 행사 때면 각양각색의 복장으로 안내봉 들고 나오고, 참 개성들이 강한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에 기전사업부에서 설계와감리 하나되기 운동의 일환으로 현장견학차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현장을 소개해 주시죠.

  

 우리 현장은 생활폐기물 전처리 및 자원순환시설 설치공사 현장입니다. 총사업비는 606억이며, 공사 기간은 20138월부터 20174월까지입니다. 발주처는 인천광역시 경제자유구역청이며 시공은 태영건설 외 4개사가, 감리는 건화 외 1개사가 맡고 있습니다.

  

현장은 크게 3가지 설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폐기물 전처리 시설입니다. 인천지역 내 신도시인 송도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자원화하기 위한 시설로서 각 가정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를 분리, 선별, 파쇄, 건조하여 고형연료로 만드는 시설입니다.

  

둘째, 고형연료 전용 보일러 설비입니다. 폐기물 전처리시설에서 생산된 고형연료를 연료로 하여 얻은 열원을 이용하여 증기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죠. 여기서 생산된 증기를 발전소에 매각하여 운영수입도 올리고 자원회수의 순기능을 담당하는 시설입니다.

  

셋째는, 슬러지 건조시설입니다. 인천 시내에서 발생하는 하수 슬러지를 건조(함수율 약 80% 10%)하여 연료화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매립 또는 해양투기 등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연료화된 건조 슬러지를 매각하여 운영수입도 얻게 됩니다. 그밖에 자원화 시설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연소 가스 처리를 위한 대기오염 방지시설 및 폐수처리시설이 부수적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생활폐기물 전처리 및 자원순환시설설치공사 현장 전경

  

Q. 우리가 생활하면서 발생시킨 생활폐기물을 그냥 쓰레기로 버리는 게 아니라 생산적인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로군요.

  

 그렇죠. 우리가 생활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생활폐기물이에요. 각 가정 또는 영업점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흔히 쓰레기와 음식물 찌꺼기로 구별되며 발생한 폐기물은 수거하여 매립장에 매립 처리하는 과정을 거쳐 처리되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는 김포 매립지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제는 쓰레기도 자원이라는 개념으로 우리 현장처럼 폐기물을 분리, 선별, 파쇄, 건조 등의 전처리 과정을 거쳐 자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겁니다. 그 덕분에, 매립에 따른 환경오염 방지 및 처리비용 절감, 자원순환이라는 순기능을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폐기물 처리에 대한 방법이나 개념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지요.

  

 

폐기물처리 공정도

  

Q. 공사를 추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정신이 없어요. 어려운 현장입니다. 현장 부지 위치도 변경되었고 우리회사에서 기본계획을 수행했는데 현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감사원 감사로 시설규모도 변경되고 공사가 중지되기도 하고․․․ 참 어려운 현장입니다. 하긴 어느 현장이든 쉬운 현장은 없어요. 그러나 전부 헤쳐 나가야 하죠. 단장으로 내가 여기 와서 근무하는 이상 시공사, 발주처와 협력하여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이곳은 폐기물 전처리시설, 소각시설, 슬러지 건조시설이 들어선 복합시설이다 보니, 다른 현장보다 설비도 많은 편이고 주변 여건도 만만하지는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건설되는 현장이 여기가 처음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공사의 60% 이상이 기계공종인데요, 기계 분야의 보조감리원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단장의 업무와 함께 기계 분야의 보조감리원 역할까지 해야 해요. 업무적으로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죠. 그래도 헤쳐나가야 하는 게 현실이므로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Q. 현장에서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사항은 무엇인가요?

  

 생활폐기물 시설은 플랜트 공사이다 보니 많은 설비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운영됩니다. 무려 400종류 이상의 설비들이 상호 결합하고 조합되어 운영되어야 하죠. 따라서 어느 한 부분에서만 문제가 발생해도 전체 시스템이 정지되는 위험을 안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소소한 부분의 품질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죠.

  

그렇다고 작은 부분에만 집착하여 집중하다 보면 전체 시스템의 밸런스를 놓칠 수 있으므로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을 가져야 해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큰 숲을 이루듯이, 각각의 설비들이 모여 폐기물 처리시설이 구성되므로 나무를 보는 꼼꼼함과 숲을 보는 넓은 안목을 동시에 갖고 두 부분을 상호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합니다.

  

매주 화요일 발주처, 감리단, 시공사와 함께 공정회의를 통하여 공사관리를 하고 있다.

  

Q. 설계와감리 하나되기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으로 바람직한 운동이라 생각해요. 사실 사무실에서 설계만 하다 보면 현장 감각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봐요. 내가 설계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설비를 배치할 때 공간배치는 적절한지? 등의 문제와 설계한 설비가 현장에서 실제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은 없는지? 등은 현장을 접해보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따라서 설계와감리 하나되기 운동을 통하여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설계자에게 전달되고, 설계자는 이를 참고하여 설계에 반영한다면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설계 성과품 작성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완성도가 높은 설계에 힘입어 현장에서 시공과 감리 수행의 완성도 역시 높아질 수 있겠죠.

   

기전사업부 현장견학 시 현장을 설명하고 있는 문 이사

  

Q. 기술자로서의 신념이 있다면?

  

 저는 중학교 때부터 장래 희망이 기술자였습니다. 그때 당시 제가 되고 싶어 했던 기술자는 엔지니어가 아닌 기능공이었어요. 어찌 됐든 기능공을 꿈꿨던 제가 여러 과정을 거쳐 기술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어요. 물론 아직도 부족한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기술자로서 평소 신념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내가 아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다. 항상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경력을 자랑하지 말고 경험과 배움을 자랑하라입니다.

  

  

Q. 마지막으로, 우리 건화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언제부턴가 저는 인사말로 건강하십시오라는 말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건강을 잃음으로써 모든 걸 놓쳐버리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이에요. 우리같은 직장인들이 건강을 잃게 되면 경제적으로 추락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사실 최악의 경우 실직을 한다 해도 본인의 눈높이를 낮추고 건설현장에라도 나가겠다고 생각하면 되긴 해요. 하지만 이것마저도 건강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지,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또한 건강을 잃음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통 또한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에요. 예전에는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만 했던 거 같아요. 그러나 지금은 마음으로부터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게 제 목표입니다. 우리 건화가족분들 모두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건화가족 모든 분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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