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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저 김종진은 회장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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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2020 2017. 5. 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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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l 건화 감리단장

        

황광웅 회장님의 시론집 『벼랑 끝으로 오라』를 읽고...

  

김 단장님은 만 10(1995~2005)을 우리 건화에서 감리단장으로 근무하셨다. 황광웅 회장님과는 서울공대 토목공학과 59학번 동기생이기도 하다. 사진은 서울공대 입학동기로 이루어진 등산팀(59산우회)이 산행 후 저녁모임을 갖는 모습(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 단장님). 김 단장님은 황 회장님은 인품이 좋으시고 정말 많은 선행을 하시는 분이다. 동기생이지만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누구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은 쑥스러워서라도 하지 않지만 회장님한테 만큼은 자연스럽게 그 표현을 하게 된다고 말하신다.

        

 회장님께서 보내주신 시론집을 받고 나서, 새 책을 접할 때 제가 늘 해오던 방식대로 책의 앞부분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최진상 사장님이 쓰신 <시론집 발간에 부쳐> ‘미래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마스터키를 읽은 다음에는 <목차>를 훑어봤습니다. 본문 내용에 들어가서는 가장 먼저 <포토 에세이>를 읽었는데 153쪽에 실린 임원 및 감리단장회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회상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만 10년을 건화와 함께 했습니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매년 참석했던 감리단장회의 그리고 격년마다 제주도에서 가진 골프, 한라산 등반과 민속촌 관광 등…. 이 중에서도 가장 추억에 남는 것이 바로 다랑어 낚시였습니다. 한번은 회장님과 같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는데 회장님 낚싯대에 큰 고기 여러 마리가 물렸습니다. 회장님 혼자서는 끌어당기지 못해 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끌어올려보니 굉장히 큰 다랑어가 한번에 3마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날 회장님은 대어상을 타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즐거웠고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읽은 것이 <함께 걸어온 길>에 실린 조남철 기술고문과 네 분의 글이었습니다. 하나같이 건화에 대한 자부심, 회장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읽은 것이 <시론>으로 변화와 혁신, 도전과 리더십 그리고 미래의 엔지니어. 늘 바쁘신 중에도 언제 이렇게 많이 공부하셨기에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나 생각할 때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이렇게 해서 회장님의 시론집을 무려 6일이나 걸려서 일독할 수 있었습니다. 시론집 68쪽에 실려 있는 회장님의 글 역경 속에서 빛난 섀클턴 리더십을 읽어가던 도중, 사진으로 보여주신 범선과 책 이름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뜨인돌 2001)를 보았습니다. 처음으로 대하는 책이라서 호기심에 바로 컴퓨터를 켜고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서점을 통해 중고서적 책방에서 책을 신청했습니다. 정가는 12000원이지만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제가 구입한 책값은 2500.

        

(저는 책을 좀 많이 사는 편에 속합니다.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은 인터파크 도서와 알라딘 두 군데. 인터넷 서점은 많은 협력업체 책방과 연결되어 있어 저렴한 가격으로 책 구입이 가능합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김 단장님은 우리 학교에서 철봉은 종진이가 최고!”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기계체조의 일인자였다. 사진은 철봉에서 대차돌기(회전운동)를 하다가 정지한 동작이다.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를 읽으며 감동을 크게 받았던 대목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남극탐험을 위해 타고 왔던 배 인듀어런스 호가 웨들해 부빙에 갇혀 침몰한 뒤 섀클턴 탐험대는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들을 겪고 나서야 남극대륙 한 끝에 있는 엘리펀트 섬에 간신히 상륙합니다. 섀클턴 대장은 엘리펀트 섬에 22명의 대원들을 남겨두고 6명이 보트 한 척으로 사우스조지아 섬의 포경선 기지가 있는 곳으로 구조 요청을 하러 떠납니다. 드레이크 해협의 난폭한 파도를 견뎌내며 1km 넘는 거리를 항해하여, 천신만고 끝에 사우스조지아 섬의 일각에 도착하였지만 여기서 포경선 기지가 있는 스트롬니스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습니다.

        

 섀클턴은 다시 3(섀클턴, 크린, 워슬리)의 대원을 추려 해발 1m가 넘는 전인미답의 설산을 등반하여 50km나 떨어진 스트롬니스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손도끼 1개와 15m짜리 밧줄 1개에 의지하여 어렵게 빙벽을 오르고 내리고 해서 드디어 포경선 기지가 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섀클턴은 그곳에서 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가 공장장으로 있다는 말을 듣고 안내를 받아 만나러 갑니다. 포경선 기지의 공장장 쇠를레와 섀클턴이 만나는 장면은 너무도 감격스러워 한번 옮겨 적습니다.

        

앤더슨이 공장장 집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쇠를레가 직접 문을 열었다. 와이셔츠 차림의 그는 여전히 팔자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세 남자를 본 그는 갑자기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얼굴에 경악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한동안 그는 놀란 채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대체 이게 누구야?”

        

가운데 선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섀클턴이네.”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완전한 침묵은 아니었다. 감격과 연민이 뒤섞인 듯한 쇠를레의 흐느낌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까닭이다.

                          

 여기서 김종진의 첫 번째 눈물샘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데도 눈물이 나와서 한참을 있다가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은 422일 토요일 새벽 4시입니다. 3시부터 글을 쓰다가 4시에 눈물이 나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포경선 기지는 세 사람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했다. 그들은 먼저 실컷 목욕을 한 다음 면도를 했다. 상점 주인들은 그들에게 새 옷을 선물했다. 그날 밤, 배불리 식사를 마친 워슬리는 포경선 샘슨 호를 타고 사우스조지아 섬을 돌아 맥니쉬와 맥카티와 빈센트가 기다리고 있던 킹하콘 만의 캠프로 갔다. 다음날 아침 워슬리는 캠프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3명의 동료들을 만났다.

     

그들의 상봉장면이 어땠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남아있던 3명의 대원들은 면도를 하고 새 옷을 입은 워슬리의 모습이 너무도 변해 있어 처음에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맥니쉬, 맥카티 그리고 빈센트는 엘리펀트 섬에서 6명이 타고 사우스조지아 섬까지 왔던 커드 호(조그만 보트)와 함께 포경선에 오른다. 이들 대원을 실은 포경선 샘슨 호는 다음날인 522일에 섀클턴이 기다리고 있는 스트롬니스에 도착했다.

        

 이 장면․․․ 맥니쉬, 맥카티 그리고 빈센트와 섀클턴이 만나는 장면에서 저의 눈물샘은 또 터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런 장면입니까.

        

필리핀 도로현장에서 현장소장으로 근무할 때 시내 풀장에서 찍은 사진(당시 나이 37). 웬만한 보디빌더들이 울고 갈 정도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엘리펀트 섬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22명의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하루 아닌 1시간, 1분이 아까운 섀클턴이었습니다. 섀클턴은 그 사이에 기지에 남아서 22명의 대원들의 구조하러 떠날 대형 목조 포경선인 서던 스카이 호를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섀클턴의 지도자로서의 진면목이 나타납니다. 무슨 일이 급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섀클턴의 머릿속에는 22명의 대원을 구출하는 문제로 꽉 차 있습니다.

        

 섀클턴이 스트롬니스에 도착한지 72시간이 지난 다음날 아침, 섀클턴과 먼저 와 있던 두 명의 동료 워슬리와 크린 3명이 엘리펀트 섬을 향해서 출발합니다. 늦게 온 3명은 쉬도록 하고서 말입니다. 이때부터 3개월에 걸친 혹독한 구조작전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구조선인 서던 스카이 호는 사우스조지아 섬을 출발한지 사흘 만에 얼음을 만나 1주일 만에 항구로 되돌아왔다. 우루과이 정부로부터 빌린 두 번째 배 역시 엿새 만에 얼음에 의해 심한 손상을 입은 채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세 번째 배인 엠마 호도 3주 동안 160km도 가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커드 호가 엘리펀트 섬을 떠난 지 벌써 4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긴장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섀클턴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늙어버렸다.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워슬리의 표현대로, 거듭되는 실패 앞에 섀클턴의 불안은 마침내 극에 달했습니다다. 여기서 다시 지도자로서의 섀클턴의 진면목이 다시 나타납니다.

        

그는 부빙을 뚫고 항해할 수 있는 튼튼한 선박을 마련해 달라고 줄기차게 영국 정부에 호소했다. 그 결과 1901년에 스콧이 타고 남극을 항해했던 디스커버리 호가 영국을 출항했다. 하지만 그 배가 사우스조지아 섬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2주가 지나야 했다. 섀클턴은 도저히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원양 항해선인 옐코 호를 지원해 달라고 칠레 정부에 간청했다. 얼음이 없는 바다에서만 항해한다는 조건하에서 다행히 허가가 떨어졌고 옐코 호는 엘리펀트 섬을 향해 출항했다.

        

이번에는 행운이 그들을 따라주었다. 출항한 지 닷새째 되는 날, 옐코 호는 엘리펀트 섬의 22명 대원이 있는 캠프가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커드 호가 이 섬을 떠난 지 넉 달 엿새가 지난 날이었다. 드디어 캠프에서도 연기 신호가 올라왔고 이 신호에 따라 구조선 옐코 호는 정확히 모래톱을 향해 다가갔다. 맥클린은 오두막으로 돌아와 블랙보로를 어깨에 들쳐 메고․․․․․

        

 이 감격적인 장면, 여기서 김종진은 더 이상 쓸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423() 새벽 1시부터입니다.

        

몇 백 미터 앞까지 다가온 배가 이윽고 멈추었다. 해변에 있던 대원들은 배의 돛이 내려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에는 네 사람이 타고 있었고 그 뒤로 너무도 낯익은 늠름한 모습의 섀클턴이 보였다. 거의 동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도 흥분한 나머지 미친 사람처럼 낄낄 웃어대는 대원들도 있었다. 잠시 후, 섀클턴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배가 가까워졌다.

        

다들 무사한가?”

        

그가 소리쳤다.

        

모두 무사합니다.”

        

그들이 대답했다.

        

와일드가 바위 틈새 안전한 곳으로 배를 안내했다. 하지만 모래톱에 깔린 얼음 때문에 상륙이 불가능했다. 와일드는 섀클턴에게 해변으로 빨리 올라오라고 재촉했다. 그들이 그 길고 긴 4개월 동안 지냈던 오두막을 잠깐이라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섀클턴은 겉으로는 안심한 듯 웃고 있으면서 한시바삐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는 와일드의 제안을 물리치고 대원들에게 빨리 배에 오르라고 채촉했다.

        

대원들이 배 앞의 바위로 뛰어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만 그들은 마치 경쟁이라고 하듯 배로 뛰어내렸다. 불과 1시간 전 까지만 해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중요한 소지품을 미련 없이 내버려둔 채. 대원들이 배에 다 탈 때까지 워슬리는 뱃전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는 항해일지에 그토록 쓰고 싶었던 한 구절을 적어 넣었다.

        

“1916. 8. 30 오전 210, 모두가 무사하다. 마침내 215분 전속력으로 전진.”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의 역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14. 12. 05 사우스조지아 섬 출발

1915. 01. 08 남극의 웨들해에서 부빙에 갇힘

1915. 11. 21 인듀어런스 호 침몰

1916. 04. 09 엘리펀트 섬 근처에서 부빙에서 탈출(보트 3, 대원 28)

1916. 04. 16 갖은 고생 끝에 엘리펀트 섬 해안 상륙(육지를 떠난 지 497만에 다시 육지를 밟은 날임).

1916. 04. 24 섀클턴과 대원 5명이 커드 호를 타고 1200km 떨어진 사우스 조지아 포경기지로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출발

1916. 08. 30 섀클턴이 옐크 호를 이끌고 엘리펀트 섬에 갇혀 있던 22명의 대원을 구출(1914125일 사우스조지아 섬을 출발한 이후 634일 만에 구출된 것임).

        

 다음은 섀클턴에 관한 책입니다. 회장님 시론집 벼랑 끝으로 오라를 읽어가다가 호기심이 생겨 구입한 책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도중 너무도 감동적이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어 컴퓨터를 이용하여 섀클턴에 관한 책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제가 찾아낸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 영어로 쓰였거나 어린이용 책은 제외했습니다.

        

 도서명

저자 

출판사 

 ①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알프레도 랜싱

뜨인돌

 ② 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알프레도 랜싱

뜨인돌

 ③ 인듀어런스

캐롤라인 알렉산더

뜨인돌

 ④ 불가능에 도전하는 섀클턴의 파워 리더십

데니스 N.T. 퍼킨스

뜨인돌

 ⑤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

데니스 N.T. 퍼킨스

뜨인돌

 ⑥ 실패한 탐험가 성공한 리더

마곳 모렐 외

북하우스

 ⑦ 어니스트 섀클턴 자서전 SOUTH

어니스트 섀클턴

뜨인돌

 ⑧ 섀클턴 평전

롤랜드 헌트포드

뜨인돌

     

김 단장님이 회장님께 보내드린 섀클턴에 관한 세 권의 책. 이외에도 건강에 관한 책 2권을 함께 보내주셨다. 김 단장님의 속마음을 여쭈었더니 일본에서는 백세를 넘은 의사가 지금도 열심히 환자를 진료하고 있더라. 우리 황 회장님께서도 건강관리를 잘 하셔서 최소 백세까지는 현업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답하신다.

        

 황 회장님은 건화 호라는 커다란 선박에 1100명이라는 선원 겸 가족을 태우고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선장에 비견됩니다.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은 회장님의 건강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 중에서 걷기에 관한 책 2권을 함께 보냅니다. 이 책을 사기 전부터 저는 매일 새벽이면 걷기를 합니다. 새벽 530분에 집을 나서 4.5km 되는 반환점에 가서 스트레칭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왕복 9km, 소요시간은 약 2시간 반.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온 날만 제외하고요.

        

김 단장님은 강원도 원주에서 40km 떨어진 고즈넉한 산자락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신다. 부인께서 꽃 키우기를 아주 좋아하셔서 주택을 둘러싼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셨다. 철쭉꽃이 만발했다.

        

집은 따님이 설계했다고 한다. 건축학과를 전공한 이 따님이 일본 유학을 하던 때 IMF 사태가 터져 아주 불안했는데, 황 회장님이 이끄는 건화에 근무한 덕분에 따님 뒷바라지를 잘 할 수 있었다며 김 단장님은 감사해 하신다.

        

 제가 이번에 회장님께 5권의 책을 보내드립니다. 참고로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구입한 책은 연평균 100권 정도입니다. 비교적 많은 책을 소화하려다 보니 부득이 밤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 저녁 9시면 자고 새벽 2시 반이나 3시에 일어나서 책을 봅니다. 그런 다음에 아침 걷기에 나섭니다. 회장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보내드리니 조금도 부담을 느끼시지 마십시오.

        

김 단장님은 다독가이시다. 한 해에 100권의 책을 읽으신다. 서재의 세 벽면은 책으로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한마디로 책 속에 파묻혀 사신다. 김 단장님은 회장님 시론집을 읽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구입한 불가능에 도전하는 섀클턴의 파워 리더십이란 책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느낀 점이 있다고 하신다. “그 책은 섀클턴이 보여준 리더십의 특징을 10가지로 정리해 놓았는데요. 10가지를 모두 갖추고 계신 분이 바로 황광웅 회장님이십니다!”

        

 참으로 긴 편지를 쓴 셈입니다. 이제 마지막 말을 회장님께 드리고 글을 마칩니다.

        

 저 김종진은 회장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 앞에 와야 할 말이 있습니다.

 “저 김종진은 회장님을 사랑합니다

        

 

2017. 4. 23. 325

원주 산골마을에서 김종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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