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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김우영 사진전 에필로그

Life/여가&문화

by kh2020 2016. 10. 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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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옛집에서 바라본 우리 것! 김우영 사진전 에필로그]

 

[기고] 교통계획부 장지용 사원

 

 아직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을의 한복판, 시월 오일. 부서데이 행사를 통해 가을의 깊은 향을 느끼고 업무효율을 증진하고자 우리 교통부는 성북동에 위치한 혜곡 최순우 옛집으로 발걸음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혜곡 최순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김우영 사진전, ‘우리 것을 담다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집 안으로 발걸음하기 전 담아본 따뜻한 소소함의 문턱

 

 여러분은 김우영 사진작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셨는지요? 이 분은 저희와 같은 공대생이었습니다. 학부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다 사진으로 삶의 뱃머리를 돌린 것입니다. 최순우의 옛집을 돌아보며 김 작가가 왜 삶의 뱃머리를 돌렸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습니다.

 

 김우영이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90년대 들어서입니다. 스톰 카메라, 헤라 화장품 기억하시나요? 송승헌과 소지섭을 데뷔시키고, 이영애를 더 절세미인으로 만든 사람이 김우영 작가입니다. “한창일 때 아침에 눈을 뜨면 20명이 넘는 연예인들이 줄을 서서 대기했어요. 얼굴. 질렸죠. 내가 뭐하나 싶었습니다. 돈은 쌓여가는데 열정은 방전되어 갔죠.”

 

 김 작가는 좌절했습니다. 삶의 뱃머리를 돌린 그 열정을 잃고 예술가로서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의미를 잃고 있던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상업예술과 절연하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나의 사진이 아닌 의뢰인의 취향에 맞춰야 하는 광고사진... 사진작가로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해 1년 중 3분의 2는 비행기를 타거나 여행지에 있을 정도인 그는 캘리포니아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매년 11일이 되면 40여 일간 미국 횡단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프를 타고 미 대륙을 두세 달씩 횡단하면서 그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오랜 방황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방황을 끝내고 정착하게 된 이유, 그의 눈에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 사막과 디트로이트 도시가 들어온 것입니다. 원초적 자연의 아름다움과 폐허의 허망함이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야누스의 얼굴과 같은 양면이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한 그는 이내 극단의 두 주제를 도시라는 테마에 담아냈습니다.

 

 그는 사막, 바다, 햇빛, 공기, 바람과 같은 원초적 자연이 공존하며 버려진 건물들이 있는 도시 풍경을 순수예술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예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사진가의 길을 걷기 전에 도시계획과 관련된 공부를 했고, 도시를 바라보며 시간의 경험이 쌓인 모습을 렌즈에 담고 싶었으며, 이를 통해 건물들이 갖고 있는 선과 면을 저만의 빛 온도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살아감의 의미를 잃고 다시금 열정과 삶의 의미를 찾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는 김우영 작가. 미국 횡단을 통해 상업광고로 세뇌돼 왔던 것들을 끊어내고 다시금 순수사진가로 작업할 수 있게 용기를 찾은 그는 지난 몇 년간 외국에서 머물면서 밖에서 바라본 한국의 미학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와 맞물려 혜곡 최순우 기념관장의 권유로 한옥을 찍게 되었습니다.

 

 그가 내린 답은, 동시에 그의 마음을 훔친 것은 눈 내린 풍경 속 한옥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흑백 수묵화 같은 색감이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눈 내린다는 소식만 들리면 카메라를 들고 전국 여기저기를 누볐고, 덕분에 도산서원, 청평사, 대흥사 등 최순우 선생이 예찬했던 사찰을 마치 묵으로 그린 수묵화 마냥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수년 동안 사진을 찍으며 한국 풍경과 한옥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가 많기에 나만의 사진을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 고심했고, 이를 위해 한옥의 선과 면을 포착해 선과 면이 자아내는 여백의 미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사진을 담았다고 합니다.

 

눈 쌓인 청평사(왼쪽)와 화엄사(오른쪽). 한옥의 선과 면, 그리고 그것의 아름다움 - 사진작가 김우영 작품

 

 이제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김우영 작가, 그는 왜 하필이면 전시관이 아닌 이곳을 택했을까요? 단순하게 최순우 기념관장의 권유로 한옥을 찍어서일까요?

 

 최순우 옛집은 큰 규모의 한옥집이 아닙니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면 한옥의 아름다움을 단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큰 나무 한 그루와 조그마한 우물이 자리하고 그 나무를 둘러싸며 우리 것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옥에 들어서자 우리를 맞이하는 풍경선(, )과 우리를 감싸는 풍경면(, 아래)

 

 김 작가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한옥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당에서 집안에 걸린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기를 원해 큰 사이즈 위주로 사진을 전시했다고 합니다.

 

마당에 서서 한눈에 들어오는 우리의 멋을 담아낸 사진들

 

 그래서일까요? 마당에 들어서면서 눈에 들어온 사진들은 단순하게 벽에 걸려있는 사진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눈이 오는 겨울 따뜻하고 포근한 한옥집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본 소복소복 눈 쌓인 서원과 사찰을 내다보는 듯했습니다.

 

 한국의 미를 알리는 것에 일생을 바친 한 사람, 혜곡 최우순선생. 한옥의 선과 면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그의 집에서,

 

 어쩌면 김 작가는 오직 눈 내리는 겨울에만 촬영하여 흑백 수묵화 같고 그래서 더 한옥의 선과 면이 도드라지는 그의 사진을 선보이는 것이,

 

 그의 사진에 담긴 비어있는 아름다움을 배가시킬 수 있고, 그가 찾고자 했던, 한국인으로서 예술사진가로서 우리 옛것의 를 발견해나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전공을 바꾸면서 삶의 뱃머리를 사진으로 돌렸던 이유, 아니 그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잃고 살아감의 의미마저 상실한 그가 다시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우리 옛것의 를 담아내기까지, 어쩌면 무모했던 방황이, 무작정 길을 떠나 사진을 담아낸 그 시간들이 힘의 원천이지 않을까요.

 

 제게도 김 작가와 같이 때로 지치고 열정이 식었을 때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도록 하는 원천이 있습니다홀연히 텐트 하나 챙겨 차를 몰고 인적이 드문 산과 강으로 가서 캠핑을 하는 것. 혼자 앉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면 이내 어지러웠던 머리와 마음이 한 곳으로 흐르기 시작하고 방황하기 시작한 삶의 뱃머리를 다시금 원 궤도에 돌려놓아 줍니다. 김 작가, 그리고 저와 같이 여러분들도 이러한 열정의 원천을 하나씩은 갖고 계신지요?

 

 최우순 옛집에 서서 김우영 작가의 사진을 바라보며 김 작가가 예전에 그랬듯, 과연 나는 의뢰인의 취향에 맞게 상업적 컨설팅 솔루션만 내놓는 광고쟁이 엔지니어에 불과하지 않은가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아울러 한 번쯤 우리 스스로 과연 전문적 지식을 기반으로 최적의 설계 컨설팅 솔루션을 내놓는 설계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정체성 고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설계 엔지니어입니다. 설계는 선과 선을 이어 면을 만들고 또 다른 선과 면의 조합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토목설계 엔지니어들이 모여 있는 건화의 엔지니어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선과 면의 아름다움을 담은 최고의 컨설팅 솔루션을 내어 놓으며, 삶의 뱃머리를 이 길로 돌려놓은 그 초심을 품으며 정진하는 나 자신, 그리고 우리 교통계획부, 나아가 건화인이 되길 소원해봅니다.

 

혜곡 최순우 선생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의 서문은 최순우 선생을 "이슬보다 영롱하고 산바람보다 신선한 글로 우리들 가슴을 언제나 한국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게 한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분의 글 중 부석사 무량수전과 주변 경관을 바라보며 쓴 짧은 글은 그 백미로 손꼽힌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었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정체성을 되새기는 곳으로 통하는 문에 서서... (왼쪽부터 정현수 상무, 장지용 사원, 장민경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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