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와우건화상 수상 - 수자원부 김유나 사원]
Q. 와우건화상 수상 축하드려요~ 소감도 중요하지만 김유나 사원의 인생 스토리를 먼저 들어보고 싶네요. 덴마크에서 살다가 오셨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우리 건화에 들어오기 전에 1년 정도 살고 왔습니다.
Q.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계시군요. 덴마크로 가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었나요?
제가 다녀본 나라들과 비교해보니 우리나라가 제일 바쁜 삶을 살고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번쯤은 내가 살고 있는 환경하고는 정반대인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죠. 전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높은 지역이 바로 북유럽(스칸디나비아 3국과 덴마크)이라고 하잖아요? “북유럽에 가서 일정기간 살아봐야지!”라는 열망을 갖게 되었죠. 당시에 북유럽으로 이민 가는 사람도 많았고 여유로운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많이 접했거든요. 근데 북유럽에 가서 살려면 언어가 통해야 하잖아요? 그중 덴마크가 영어를 가장 잘한다고 해서 이곳으로 선택하게 되었죠.
하얀 나라 북유럽. 마치 영화 러브스토리, 의사 지바고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Q. 덴마크어가 따로 있을 텐데요?
네, 있죠. 북유럽은 덴마크어, 스웨덴어, 핀란드어 등 다 따로 있어요. 대신에 신기하게도 덴마크 친구와 스웨덴 친구가 서로 대화를 하면 100% 이해는 못 해도 어느 정도는 감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민족의 뿌리가 같아서 그런 모양이에요. 제가 두 나라의 친구 각각 한 명씩과 살았는데 서로 금방 말이 통하더군요.
Q. 덴마크에서 영어 사용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나요?
한국 사람들이 막연하게 갖고 있는 생각이 “해외에 가면 어디로 가든 영어로 말해도 다 알아들을 것이야!” 라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특히 유럽은요. 심지어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정말 못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죠.
어쨌든 저도 한국 사람인지라 덴마크에 도착하자마자 영어가 먼저 나오더라고요. 공항에서 나와 주소를 하나 달랑 가지고 길을 찾다 보니까 헤매고 있었죠. 그때 제 옆에서 담배를 태우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어디 가느냐. 좀 보자” 하셨어요. “제가 이 주소를 찾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더니 “이 버스 다음에 오는 버스 타고…” 친절하게 말씀을 하시고 다시 담배를 태우시는 거예요. 그 순간에는 “와, 영어가 통했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너무 영어를 잘하시는 거예요. 영어권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죠.
덴마크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고 알고 가긴 했지만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쓰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놀랐어요. 게다가 유럽에 있기 때문에 영국식 발음을 사용할 거 같았지만 완전한 미국식 영어였음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Q. 그러면... 영어가 잘 통하는 덴마크에서 1년이나 살 정도면 김유나 사원도 영어 꽤 잘할 거 같은데요? 어떻게 영어 배웠나요?
원래 영어를 정말 싫어했어요. “영어는 꼭 해야 하는 거다.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으니까 더 싫어했죠. 그러다가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계기가 되던 일이 있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내 힘으로 번 돈을 갖고 싶었어요. 알바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20살 되던 해에 무주리조트로 알바를 갔어요. 안내센터에서 알바를 했는데 종종 외국인들한테 전화가 왔어요. 안내센터에 직원이 8명이었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뿐인 거예요. 매니저 한 명. 그때 “영어를 진짜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벌어놓은 돈을 다 가지고, 휴학하고, 바로 캐나다로 갔어요. 영어 공부하려고...
Q. 대단한 결단이네요! 어느 지역으로 갔나요?
처음에는 ‘써리’라는 지역을 갔어요. 밴쿠버에서 40분 정도 떨어져 있어요. 나름 우리나라 사람을 피한다고 소도시로 간 거죠. 그래야 영어를 확실히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Q. 혼자 간 거 아니에요? 진짜 용감합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부모님께서 믿고 보내셨으니까요^^
Q. 오늘 인터뷰, 너무 흥미진진하네요. 그다음은요?
우리나라 사람 피해서 써리로 간 거였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이미 3개월 어학원 코스를 등록했기 때문에 그곳에 머물러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섬으로 들어가면 한국 사람이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어서 ‘빅토리아 섬’이라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는 진짜 한국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근데요, 이렇게 어학원만 다녀서는 제 영어 실력을 향상하는 데 부족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때 빅토리아 관광청이 눈에 들어왔어요. 곧바로 견학을 갔습니다. 마침 운 좋게도, ‘ambassador’라고 해서 지역에 관광 온 사람들에게 안내해주는 봉사활동 같은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관광청에서 하다 보니까 관광코스도 무료로 제공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지원을 했죠. 주말엔 안내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해외에서 온 사람들하고 많은 교류를 했었어요.
ambassador를 하며 함께 활동한 아주머니
Q. 한국 사람을 피해 다니면서 영어를 직접 몸으로 배우신 것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영어를 해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한국말만 할 거 같았거든요. 더욱이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 하는 거 굉장히 어색해요. 그래서 영어는 한마디도 안 하게 되죠.
Q. 캬~ 남극에 떨어뜨려도 살아가실 분이네요.
단지 저한테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던 거 같아요.
Q. 찾으니까 보이는 거예요. 자기 스스로 한계를 그어 놓는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 이상의 것을 못하죠. 대신에, 선택의 폭에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김유나 사원은 그런 능력과 의지의 소유자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 회사의 Beyond Border 정신이 바로 그런 의미일 텐데요. 덴마크에 가게 된 것도 “까짓 거 부딪쳐 보는 거야!”라며 도전하신 결과라고 봐요. 덴마크에서는 코펜하겐에 있었나요?
네, 저는 코펜하겐에 있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녔어요. 스웨덴, 핀란드 등 주변 다른 나라로 이동해서 다녔죠.
발트 3국 여행
스웨덴 무스 안녕?
Q. 덴마크에서 체험하신 얘기 좀 해주세요. 티볼리공원에 가보셨나요? 네. 티볼리는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이라고 하죠. 60년대에 지어졌을 거예요. 아무래도 유명한 곳이니까 생일 기념으로 갔어요. 시설이 낡았을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너무 현대적이지도 않고 못 탈 정도로 옛날 스타일도 아니었어요. 옛날 느낌과 현대적인 모습이 잘 조화를 이루는 곳이어서 너무 아름다웠어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티볼리의 야경
Q. 덴마크는 해가 일찍 지죠?
맞아요. 3시면 해가 떨어져요. 그래서 덴마크는 가족하고 생활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생각해요. 저는 3~4시에 산책을 많이 다녔어요. 공원에 가보면 놀이터에 아이들이 놀러 나오는데 꼭 부모님 중에 한 명이 같이 나와요. 보통 70% 정도 아빠가 나와서 보고 있어요. 거기서는 보통 3시면 퇴근을 하니까 아이들 데리고 나와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놀이터 주변으로 아빠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여요.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거 같더라고요. 비단 덴마크뿐만 아니라 북유럽 쪽을 여행하다 보면 보통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노는 부모님은 다 아버지에요. 그리고 애들끼리만 나와서 노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조용한 주택가. 자전거로 집에 가는 아이들
Q. 덴마크 하면 복지제도가 유명하잖아요. 실제로 어때요?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말하면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 이야기랑 같아요. 소득의 50% 가까이 세금을 내죠. 그러다 보니까 수입의 격차가 크지 않은 편이기도 해요. 평등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요. 전반적으로 삶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처음에 집을 구하기 전에 에어비앤비(Airbnb)에서 지냈어요. 1층은 주인댁이 살았고 저는 2층에서 머물렀죠. 주인집 아주머니는 제약회사 연구원이었어요. 돈을 많이 버는 층에 속하는 분이기도 했죠. 저녁때 차 한잔하면서 “덴마크가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만족하신지요?”라고 물어봤어요. 이분은 참 냉철하게 말씀하시더군요.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꼭 좋은 것만 있지는 않다”고 하셨어요.
반면에 그 집을 나와서 같이 살게 된 덴마크인 동생은 “난 대체로 만족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 친구는 대학생이었는데 덴마크는 대학교까지 무료에요. 심지어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는 월 120만 원 정도의 용돈을 주더라고요. 대학교를 선택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대체로 평준화가 되어 있다 보니까 고등학생 때부터 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더라고요.
Q. 욕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거 같네요.
맞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불만족일 수 있어요. 자기 욕심껏 해서 성과를 내면 그에 대한 합당한 걸 받고 싶잖아요. 금전적인 것이든 다른 어떤 것이라도요. 그런 면에서는 욕심 많은 사람에겐 안 맞을 수 있죠.
어쩌면 활동적인 사람에게도 안 맞을 수 있어요. 되게 심심한 나라에요. 조용하고 평화로워요. 전 쉬러 가는 게 목적이다 보니까 너무 잘 맞았는데, 활동적인 사람들은 북유럽 생활하는 게 지루해서 얼마 안 있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밤에 화려하고 밤늦게까지 술 먹고 노는 게 익숙한데 거기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니까요.
Royal Library 내 가든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Q. 그럼 아침 일과시간이 빨라지나요?
에어비앤비에 살 때 오후 2~3시에 1층에 내려오면 주인아주머니가 계셨어요. 처음엔 일을 안 하시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알고선 출근은 몇 시에 하시느냐고 물어보니까. 7시 정도에 나간 데요. 얼추 6시간에서 7시간 사이로 일하는 거 같더라고요.
아, 그때 아주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보고 왜 왔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일에 치여서 쉬는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서 왔다”고 했더니 “얼마나 일을 했길래 그러냐” 물으시더군요. “나는 보통 12시 가까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온다. 내 친구는 12시 이전에 들어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엄청 놀라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저녁 6시쯤이었는데 아주머니 남편이 부엌에서 노트북으로 일하고 계셨어요. “자기 남편이 직장을 옮겨서 야근을 하더니 너무 피곤해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 그럼 보통 몇 시에 끝나나요?” 하고 물어봤더니, “야근해서 다섯 시 반, 여섯 시까지 일을 한다. 그때도 못 끝내면 집에 와서 한 두 시간 일을 한다”고 하는 거예요. 음...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힘들 수 있겠죠? ^^
Q. 그곳 사람들은 가족하고 ‘저녁 있는 삶’을 즐긴다고 하는데 저녁 식사는 언제쯤 드세요?
5~6시쯤 먹어요. 먹고 차 마시고 얘기하고 그런 데에 시간을 굉장히 많이 보내요. 잠은 10시, 11시쯤 자고요.
Q. 저녁 있는 삶이라는 게 친구들하고 놀거나 개인적인 일을 본다거나 그런 의미로서의 삶인가요?
그런 의미로서의 말도 맞지만, 중요한 게 가족이고 가족이 중심이에요. 단적인 예로 크리스마스 때 보면 우리나라하고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던 게 우리나라도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잖아요. 덴마크는 80%~90%가 기독교에요. 그러다 보니까 크리스마스가 굉장히 큰 명절이죠. 그때마다 명절 대이동처럼 가족끼리 모인대요. 게임도 많이 하고요. 같이 살았던 친구가 대학생이니까 20살이 넘었어요. 대학생인데도 할머니랑 게임을 하고 선물을 주는 놀이를 한데요. 마니또 같은 것을요. 할머니뿐만 아니라 가족들 전체가 다 같이 즐긴다고 해요. 금액에 따라 선물도 쫘악 준비해두고요.
시내에서 덴마크 여왕을 상징하는 데이지 꽃을 나눠주고 있다.
Q. 어떤 문화가 가장 마음에 들던가요?
사람들이 여유롭게 살고 있다는 것... 여유로운 삶. 저녁이 있는 삶. 처음에 가서 놀랐던 게 자전거 문화에요. 덴마크에선 자전거를 진짜 많이 타고 다녀요. 저도 덴마크에 있을 때 자전거를 구해서 타고 다니다가 팔고 왔어요.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어요. 자전거를 위한 신호도 따로 있고 자전거 두 대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어요. 덴마크는 차가 많지 않아서 자전거도로 폭을 크게 해도 문제가 없는 거 같더군요.
제2의 발이 되어준 자전거
아이들도 페달 없는 자전거를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배워요. 페달이 없는데 발로라도 땅을 밀면서 다니게 하고 균형감각을 익히는 거예요. 정말 너무 귀여워요.
자전거 나라답게 아기 때부터 자전거 감각을 익힌다.(페달 없이 발로 가는 자전거)
Q. 우리나라는 도심에 자전거도로를 엄청 크게 만들어도 타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 같아요. 한마디로 수요가 덴마크만큼은 없다는 거죠.
지형 자체가 산지라서 그런 거 같아요. 회사에서 저희 집만 가려 해도 까치고개를 넘어야 하는 걸요. 자전거 타기 굉장히 힘들죠. 근데 덴마크는 산이 없고 평지에요. 그래서 자전거 타기 좋죠. 그리고 자동차 세금이 워낙 비싸니까 자동차를 잘 안 사요. 자동차를 사면 세금을 엄청 많이 내요. 차 한 대 값만큼의 세금을 더 낸다고 하더군요. 그렇게까지 세금을 내게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동차 수를 늘리지 않기 위한 이유가 제일 클 거예요.
Nørreport 역 앞 자전거 주차장
Q. 덴마크는 인어공주의 고향이잖아요? 해안도 예쁠 거 같은데요?
섬이 많아서 예쁜 곳이 많죠. 저도 해수욕장을 몇 번 가봤는데요. 더운 날짜가 굉장히 적고요, 해가 나오는 날짜도 적어요. 그래서 한 번 날씨가 쨍! 하잖아요? 그러면 온 동네 사람이 다 몰려나와서 햇빛에 누워 있어요. 심지어 강아지도 나와서 드러누워 있죠. ㅋㅋ
온 동네 사람 다 나와 있는 거 같죠?
Q. 재미있네요. 한국에서는 해가 쨍쨍 하면 강아지까지도 그늘에 들어가 숨는데 말이죠. 혹시 가기 전에 읽은 책이 있나요?
여행책을 하나 봤고요. 덴마크 어를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 싶어서 덴마크 어로 쓰인 책도 찾아봤는데 89년에 나왔더라고요. 그것도 딱 1권, 녹색 책으로 한문도 섞여 있는...^^ 그래서 그건 포기를 했고 『덴마크 사람처럼』이라는 책을 하나 사서 덴마크로 떠났죠. 일부러 가기 전에 읽지 않았어요. 괜히 선입견이 생길까봐서요. 현지에 가서 생활하면서 중간 중간에 읽었어요. 아, 그래서 저 사람들이 이런 이유에서 이렇게 생활하고 있구나... 그런 식으로 활용했어요.
한국에서는 덴마크어를 배울 수가 없어 덴마크에 가서 국가 무료 운영 학원에 다녔다.
그 책을 처음 샀을 때 표지에 글귀가 하나 쓰여 있었어요. 간디가 한 말이고요. “가장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 바퀴 도는 여행이 아니라 단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이 글귀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어요. 전에 여행이라고 하면은 “최대한 많은 나라, 이왕 나가는데 많이 돌아다녀야지!” 했어요. 근데 그 문구를 읽어보니까 이제는 그 사람들의 생활이 뭔지, 삶이 뭔지 제대로 느끼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덧붙여 제 내면으로의 여행까지도요.
덴마크에 가져간 책이자 여행을 다니는 의미를 다시 찾게 해준 책
Q. 그렇죠. 여행을 통해 거울로 비춰보듯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또 다른 ‘특별하게 느꼈다’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아까 말씀드렸던 가족과의 삶이라는 것을 우리나라에도 많이 적용이 되었으면 해요. 아까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자전거라고 말씀드렸는데 두 번째가 조명이에요. 모든 가정집이 불을 다 어둡게 하고 살아요. LED가 아니라. 노란색 조명을 써요. 일부러 그렇게 하고 산대요.
Q. 이웃나라 독일도 그렇다고 하던데, 그곳 사람들은 절약정신이 몸에 밴 때문 아닐까요?
그런 점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음... 요즘에 책이 또 하나 나온 게 있어요. 『휘게 라이프』라고요. 덴마크 삶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휘게’에요. 느리고, 단순하고, 여유롭고 그런 삶을 지향하는 문화를 뜻하죠. 휘게 십계명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집안의 조명을 일부러 낮추고 아늑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거예요.
휘게 십계명
1. 분위기 : 조명을 조금 어둡게 한다. 2. 지금 이 순간 : 현재에 충실하라. 휴대전화를 끈다. 3. 달콤한 음식 : 커피, 초콜릿, 쿠키, 케이크, 사탕. 더 주세요! 4. 평등 : ‘나’보다는 ‘우리’. 뭔가를 함께하거나 TV를 함께 시청한다. 5. 감사 : 만끽하라.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인지도 모른다. 6. 조화 : 당신이 무엇을 성취했든 뽐낼 필요가 없다. 7. 편안함 : 휴식을 취한다. 긴장을 풀고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8. 휴전 : 감정 소모는 그만. 정치에 관해서라면 나중에 얘기한다. 9. 화목 :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관계를 다져보자. 10. 보금자리 : 이곳은 당신의 세계다. 평화롭고 안전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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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 우리는 습관적으로 뭐든지 물질과 연관을 시키려고 하잖아요. 자본주의에 흠씬 취한 탓이라고 봐야 하나? 어쨌든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군요.
네, 맞아요. 그들은 집안 인테리어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요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북유럽 스타일... 이렇게 많이 유행하고 있잖아요.
Q.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라.... 이케아가 스웨덴 기업이죠?
그렇죠. 이케아가 많이 발전한 이유가, 집의 인테리어를 나와 가족의 취향에 맞게 하나하나 고르고 같이 만드는 문화가 바탕인 거 같아요. 완제품이 안 나오잖아요. 스스로 조립해서 성취감을 높이고 애정을 갖게 만드니까요. 그런 문화가 참 좋은 거 같아요.
로얄코펜하겐과 더불어 엔틱커트러리가 유명한 덴마크
Q. 덴마크 이야기에 푹 젖어들다보니 회사 이야기, 업무 이야기는 너무 안 한 거 같네요. 와우건화상을 받으니 기분이 어떠셨어요?
칭찬 댓글을 봤는데 너무 감사한 거예요.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제가 뭔가 성취한 것을 보여주거나 열심히 노력한 게 있었으면 그런 반응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텐데, 저는 그냥 평범하게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냈을 뿐이거든요. 여러 과찬의 말씀들을 받다 보니까 너무 부끄러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근데요, 묘하게도 그 댓글들을 은근히 다시 읽어보고 또 읽어보게 되더라고요. 무슨 말씀 써주셨는지도 거의 기억을 하게 되고요. 저랑 같이 업무를 하지 않아서 많이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해서 칭찬을 써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던 분들도 계세요. “저분이 나에게 이런 생각을 갖고 계셨구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어요.
Q. 겸손한 마음이에요. 칭찬받아 마땅하니까 그런 거고요. 댓글을 쫙 보면 일관된 게 스마일, 분위기를 유쾌하게 해준다. 성격적으로 그런가요?
저는 굳이 밝고 어두운 것 중에 선택한다면 전 조금 밝은 쪽인 것 같긴 해요.
Q.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았나 보네요?
부모님 영향도 받았죠. 저희 어머니가 많이 밝고 활동적이세요.
Q. 어머니가 활동적이시라고요? 개인적으로 활동하시는 게 있나요?
항상 운동 열심히 하시고 저희 가족이 주말에 집에 거의 없었어요. 항상 같이 야외활동 했던 게 많았던 거 같고... 산에 가거나 물놀이를 가거나... 어머니는 저희하고 아니더라도 바깥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특히 볼링을 진짜 잘 치셨어요.
Q. 김유나 사원도 운동 좋아하겠어요?
네. 저 운동 좋아해요. 테니스도 좋아하고 스노우보드도 좋아해요. 테니스는 실제로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경기 관람도 좋아해서 세계 4대 테니스 대회로 손꼽히는 프랑스 오픈을 보러 가기도 했어요.
세계 4대 테니스 대회 중 프랑스 오픈 경기.
Q. 우와, 멋있네요! 스노우보드는 공중부양 같은 묘기 사진이 있나요?
스노우보드 타시는 분들 중에 퍼포먼스를 주로 하시는 분들이 있고 저 같이 라이딩을 위주로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라이딩을 좋아해요. 너무 좋아해서 20대 초반에는 스노우보드 강사도 했었죠. 그때에 비하면 지금 실력은 턱도 없지만요.
스노우보드를 타게 된 건 아버지 영향이 커요. 저희 아버지가 스키를 굉장히 잘 타시고 지금도 저랑 종종 가십니다. 보통 무주리조트로 다녔는데, 자주 다니다 보니까 아버지와 저만의 슬로프 루트도 있습니다. 친구들이랑 가도 재미있는데 아버지랑 다니는 게 훨씬 더 재밌어요. 둘의 타는 속도가 비슷해서 슬로프를 가르며 쭉쭉 치고 나가는 게 서로 잘 맞아요. 동영상도 찍어주시고요.^^
아빠와 스키장~
Q. 학창시절에 자라오면서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쳤던 시기가 언제인가요?
모든 학창시절이 저에게는 영향을 미쳤어요. 저희 부모님께서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도록 해주셨어요. 저를 많이 믿어주셨죠. 예를 들어서 제가 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다는 것? 제가 하고 싶다고 하면 믿고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하셨어요.
Q. 오늘 인터뷰,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로군요... 밴드요?
제가 중학교 때 인디밴드 음악에 너무 빠져서 베이스를 배웠어요. 마침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밴드 동아리가 있어서 들어갔죠.
공연도 열심히 했어요. 대학교 축제라든지 지방 행사들 많이 다녔어요. 에이전시 같은 공연회사에서 주최하는 길거리 공연도 했고요. 혼자 연습하고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나가서 같이 울림을 형성하는 그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어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려요.^^
베이스와 동고동락한 시간을 뒤로하고 마지막 공연을 하는 모습이다.
Q. 혹시 그 쪽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생각? 그런 비슷한 마음이라도 있었나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홍대를 너무 가고 싶었어요. 정말로요. 그때는 홍대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너무 유명했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었죠.
Q. 출신 고등학교를 살짝 찾아보니까 학교에 돌 같은 게 있는데 “non Sibi(not for self)”가 쓰여 있더라고요.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산다는 의미거든요. ‘상생’. 어떻게 보면 학교의 정신이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공동선(共同善)’이 학교의 교육 철학이라고 하더군요. 이게 덴마크 정신하고 통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 덴마크를 다녀온 김유나 사원이 한국에 돌아와서 취직한 회사가 건화예요. 건화에는 송무백열, 상생이라는 정신이 살아있죠. 그런 걸 보면 김유나 사원은 천직을 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건화 와서 깜짝 놀랐어요. 토목회사를 처음 다니는 것도 아니고 잠깐 시공회사에도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우리 업계가 딱딱한 느낌이 있어요. 저는 상생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상생이라는 단어와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신규입사자 교육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요. 회장님께서 송무백열을 강조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회사의 이미지를 이해하게 되었죠. “건화는 다르구나”라고 느꼈어요.
제가 최진상 사장님을 신규입사자교육 때랑 CEO특강 시간 때밖에 뵐 수 없었어요. 그 두 번 뵈었을 때 제가 마이크를 잡고 말씀드렸던 게 “토목과 인문학적인 조화를 보여주는 회사, 건화가 많이 인상적이다”라는 말이었어요. 건화에 참 잘 들어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부서에서 조그만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지만, 저를 감싸고 있는 큰 테두리가 제가 좋아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환경을 향해 나아가는 곳이고, 제가 지금 그곳에서 일한다는 게 좋다고 느껴졌어요. 심적으로 안정감도 생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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