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원씽 “인문학 뽀개기” 시리즈 (2)

 

                                                                              - 수도환경본부 신승민 대리

 

2019년 개인원씽 우수사례로 뽑힌 신 대리의 “인문학 도서 뽀개기”의 실천  일환으로 인문학 독후감을 건화스토리를 통해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가을에 ‘길 위의 인문학’ 강연에 참석한 신 대리의 인문학 강연 참석 소감문을 올려드립니다. 우리 건화가족도 잠시 짬을 내어 인문학 강연이나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한 해를 의미 있게 마무리해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 편집자 주

 


 

나는 누구인가?

 

평소에 그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강연을 해주신 이윤서 작가께서 쉽게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설명해주고 몇 가지 질문들을 참석자들과 공유하면서 강의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강연에 들어가면서 이윤서 작가님의 첫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였습니다. 강의를 듣는 분들의 대부분이 40대 이상이었는데 일반적인 답변이 “OO동에서 온 O살 애기 엄마 또는 아빠 누구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작가님께서 같은 질문을 초등학생들에게 물으면 “O학년O반 누구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성인들에게 물으면 보통 지역이나 나이로 본인 소개를 한다고 했습니다.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앞으로 나올 고흐의 일생과 작품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였고 본격적인 강의를 하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1,300여 점의 스케치와 850점의 그림을 남겼고, 1990년 뉴욕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가셰 박사의 초상>이란 작품이 600억에 낙찰될 정도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지금의 명성과는 다르게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도 작품이 소개될 당시에는 미술계의 반응이 변변치 않았다고 합니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살아있을 때는 평생 딱 한 개의 작품 밖에 팔지 못했으며 미술계에서 알려진 인물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의 일생은 제3자가 보았을 때는 불쌍하고 암울함의 연속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는 굉장히 엄한 가정에서 자랐고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극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고, 그가 바라왔던 행복한 가정도 결국 이루지 못했으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합니다. 


  

                  고흐 작, <가셰 박사의 초상>                                                  흐 작, <별이 빛나는 밤>

 

그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색채를 단지 빛을 표현하는 것으로 한정시키거나 사진 찍는 것처럼 사물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색과 형태를 통해 직접적인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고흐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자화상>에서는 그림 속에 격렬한 그의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주변의 소용돌이 무늬는 그의 고통과 불안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까마귀 나는 밀밭>에서는 폭풍 같은 하늘에 까마귀가 밀밭 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고흐 작, <자화상>                                             고흐 작, <까마귀 나는 밀밭> 

 

“내 그림의 가치가 인정받는 날은 꼭 온다”

 

고흐의 그림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동생 태오와 주고받은 668통의 편지를 통해서도 그의 행적과 감정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데, 힘든 인생의 여정에서도 본인만의 철학과 신념을 꿋꿋이 지켜낸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내 그림이 안 팔리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이나 내 여윈 몸뚱아리의 품삯보다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날이 오겠지. 확신을 가져라. 아니 확신에 찬 것처럼 행동하라. 누군가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 주어라.”

 

이처럼 가난하고 불행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본인과 본인의 그림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수시로 달라지는 정신과 신체 건강의 기복을 넘어서서 후에라도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인문학 강의라는 것을 한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큰 기대 없이 참석했으나 강의 끝나고 나서는 생각이 많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에 대해 알게 됨은 물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중요한 걸 놓치지 않는 삶

 

고흐의 일생을 들으면서 일련의 과정이나 사건들을 제게 비춰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였습니다. 많은 이가 ‘고흐가 어릴 때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 불행을 가져다주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름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이름을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당연한 정도로 여겼지, 특별히 마음에 의미를 두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이름 하나 때문에 평생이 어려웠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이름을 지어주신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윤서 작가님의 강의 시작 시 질문에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에 대해 피상적으로 말하기는 쉬운데, 정작 본인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하거나 표현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듯합니다. 평소에 자신을 둘러싼 외면의 것들에만 집중하여 본인의 내면을 살펴볼 여유가 없거나 맞닥뜨리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흐는 우여곡절이 많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바로 눈앞의 것들만 해결하느라 급급했던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중요한 걸 놓치고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삶의 큰 줄기 정도는 정해 놓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직 못 찾았지만 나의 가치는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지 고민하고 행동한다면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나는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Vincent Willem van Gogh
빈센트 빌럼 반 고흐(1853년 ~ 1890년)는 19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자화상>과 <해바라기 연작>,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이 있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과 프랑스를 떠돌면서 책방 점원과 선교사 등을 지냈다. 1880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천직임을 깨닫고 습작에 열중했다. 네덜란드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한 후 프랑스에서 인상파 화가들을 만나면서 그의 독특한 붓놀림으로 자연의 형태와 색채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개성적인 화풍이 확립되었다. 그는 현대회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 Daum 백과에서 부분 인용

 

고흐 관련 뮤지컬, 영화 추천 

 

        연말, 연시 고흐를 쉽고 즐겁게 만날 수 있어서

        적극 추천 드립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삶, 뮤지컬과 영화로 만난다.’
    -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RXZ1M5R2


Posted by kh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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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용선 2019.12.13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마침 영화가 개봉하는군요. 고흐에 마구 관심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