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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토리] 스미스 부대의 헌신을 기리는 죽미령 평화공원

Field/생생현장

by kh2020 2021. 5. 1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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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저조경부 이광호 이사

 

오산시 죽미령 평화공원은 한국전쟁(1950~1953년)에서 큰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개전 이후 처음으로 북한과 유엔군은 이곳 죽미령에서 조우하여 치열한 교전을 벌였습니다. 지금 죽미령에 있는 유엔 초전기념관은 전시ㆍ추모의 공간이 되고 있으며, 죽미령 평화공원은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날 시민들의 여가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이곳 죽미령 평화공원은 우리 건화 레저조경부의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2017년 4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오산시 죽미령 UN초전기념 평화공원 조성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 과업을 수행한 이광호 이사를 만나 공원의 콘셉트와 공간구성, 스토리 입히기 작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한국전쟁과 죽미령 고개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UN 안보리는 그 이튿날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였습니다. 6월 30일 맥아더 장군은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24사단의 투입을 명령했고 그 선발대로 스미스 기동부대가 한반도에 첫 발을 딛게 됩니다.

 

540명의 부대원들은 일본에서 부산까지 항공기로, 부산에서 대전까지는 철도로, 그리고 대전에서 수원까지는 차량을 이용해 오산까지 이동했습니다. 오산을 지나는 1번 국도가 북한군 주력의 공격루트였기 때문에 스미스 부대는 그 길목인 죽미령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을 기다렸습니다.

 

당시 미군들은 북한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 아니던가). 드디어 스미스 부대는 7월 5일 북한군과 처음 마주치게 되었는데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의 선봉 부대를 막아내기에는 화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스미스 부대는 결사 항전했지만 결국 150명이 전사하고 26명이 실종되며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미령 평화공원 앞 광장에는 M48A2C 패튼 전차(한국전쟁 때 활약한 M48 전차의 후속모델)와 F-86 세이버 전투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평화공원의 전경. 전시된 조형물들은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스토리가 공원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죽미령 평화공원은 UN군을 대표하는 미군의 한국전쟁 첫 전투 지역으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군이 참전하면 전쟁이 손쉽게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최정예 북한군을 막기는 힘들었습니다. 비록 전투에 패배했지만 그들의 숭고한 희생은 한반도의 평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죽미령 평화공원의 설계 콘셉트

 

공원설계가 시작되기 전, 이곳에는 몇몇 조형물과 전시장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교지구 택지가 개발되고 새로운 주거단지가 들어오면서 시민을 위한 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죽미령 평화공원은 복합적인 기능을 담아서 가족들이 휴식을 즐기면서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요소도 제공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습니다.

 

추모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해 지나치게 엄숙한 분위기로 만들게 되면 공원 이용성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에, 추모의 기능과 함께 역사적 의미에 대한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시민들이 여가ㆍ문화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복합적인 공간으로 계획하였습니다.

 

1950년 7월 5일 치열했던 전장의 기억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진 ‘평화와 마주하는 0705 평화의 숲’을 주된 설계 콘셉트로 삼았고, 평화공원의 여러 조형물들은 스미스 부대원의 1인칭 시점으로 당시 전장의 기억들을 디오라마 형식으로 연출하였습니다.

 

(디오라마 : 풍경이나 그림을 배경으로 두고 축소 모형을 설치해 역사적 사건이나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을 뜻한다.)

 

스미스 부대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타고 왔던 더글러스 C-54 수송기를 모티브로 삼은 조형게이트, 수송기에서 내려 작전에 참여하는 스미스 부대의 실루엣을 연출한 미러폰드와 조형물을 설치하였고, 전투 당시 비가 내렸던 상황을 워터게이트로 연출하는 한편, 평화공원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벽에는 참전 부대원들의 이름이 새겨 넣었습니다.

 

더글라스 C-54 조형게이트. 스미스 부대는 수송기 6대에 나눠 타고 일본 이타즈케 공군기지에서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이동하였다.  
비 내리는 날, 전장으로 향하는 병사들의 그림자가 물 위에 비친다.  

 

전투에 참가한 부대원들의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 옆쪽의 동그라미들은 전투 때 박힌 탄흔을 상징하며, 조형물 가운데에는 “스미스 기동부대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용감성을 기리며 그 덕분에 이 땅에 평화와 번영이 찾아왔음을 감사한다”는 글이 쓰여 있다.  

공원 내에 설치된 다양한 조형물의 경우, 우리가 직접 디자인에 대한 콘셉트를 잡고 조형물을 제작하는 협력업체에 의뢰해 제작ㆍ설치합니다. 우리가 아이디어를 주고 시안을 보내주면 협력업체는 전체와 조화가 맞는지 대해 고려하고 조형물을 구체화시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죽미령 공원의 모든 구역은 무장애 공간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연세가 많기 때문에 휠체어 등의 이동 보조기구를 통해 불편함 없이 이용 가능하도록 세심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평화공원에서 데크로 만들어진 길을 오르면 고지에는 다오라마 전망대가 있다. 북한군의 이동을 감시하는 스미스 부대원의 동상이 보이고 양 옆으로 빛의 기둥들이 세워져 있다.

 

 평화공원 비하인드 스토리 

 

미국 워싱턴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설계한 디자이너 레키가 오산시 초청으로 방한하여 공원 조성에 관한 자문을 했습니다. 이 공원에 대한 모티브는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와 방향성에 있어서는 일맥상통합니다.

 

현재 공원이 개발된 일대는 전부 숲이었습니다. 데크가 놓인 길 주변을 보면 새로 심은 나무들만 보일 겁니다. 공원을 조성하기 전 그에 앞서 유해발굴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의견을 받아들여 죽미령 전투에서 실종된 미군에 대한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발굴 결과 유해는 발굴되지 않았고 탄피 같은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진작 했어야 했던 일들을 70년 후에 이렇게나마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산기지를 통해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방문을 예정했던 곳이 바로 이곳 죽미령 평화공원이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첫 미군의 첫 희생자가 나온 곳이라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방문 대상지로 거론된 것이지요. 하지만 당시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을 첫 방문지로 결정했습니다.

  

시민 친화적인 휴식 공간 

 

평화공원은 지역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데도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공원 곳곳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웃음소리가 넘치는 피크닉 공간과 놀이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공원 한 편에 보강토 옹벽을 높이 세워서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습니다.

 

완공 후 들러봤던 죽미령 공원에서 아쉬운 점은 시공하는 과정에서 설계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시공할 때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해 나가야 했는데, 그 과정이 없어서 실무자로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평화공원 한쪽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의 내방객이 제법 많다.

 

스토리를 발굴하고 현장에 입히는 일

 

역사적인 의미와 스토리까지 담긴 훌륭한 공원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과업 수행 전에 문헌 조사를 하고 구전되는 이야기들까지 수집하지만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 입증이 어려워 인문사회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도 자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실 조경 설계를 하면서 스토리를 찾고 만들어내는 일이 힘든 일인데, 죽미령 평화공원은 역사적인 스토리가 풍부한 장소여서 설계 콘셉트를 잡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콘셉트를 잡을 때 가장 많이 애를 먹기도 합니다. 발주처 관계자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방향 자체가 뒤바뀌는 경우도 많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도 간혹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생각이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피드백하고 다시 맞춰가는 일들이 많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평화공원이라는 명확한 콘셉트가 있었기 때문에 협의가 수월했습니다.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이광호 이사

설계 과업을 수행하면서 실무 작업을 했던 홍성우 부장과 이덕용 과장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출장과 외근으로 저 혼자 인터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동료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단단한 팀워크를 발휘한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스미스 부대원처럼 수많은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희생을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담을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 깊은 프로젝트였습니다. 가족들과 아이들과 함께 들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사랑받기를 기원합니다.

 

설계 당시의 죽미령 평화공원 조감도

 

https://www.youtube.com/watch?v=yfqSioi2vqg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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